패럴림픽 강국 우크라이나 :

그들의 메달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 HEAD 1988년은 패럴림픽의 역사에서 중요한 해였다. 처음으로 올림픽이 끝난 직후 바로 같은 도시 내에서 올림픽 때 사용된 시설을 활용해 패럴림픽 대회를 개최하게 된 해였기 때문이다. 이는 패럴림픽 대회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서울 1988년 하계패럴림픽 이후로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같은 연도에 같은 도시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는 결국 2001년에 세계 장애인 협회(IPC) 와 세계 올림픽 협회(IOC) 간에 협정을 맺는 발판이 되었다. 아직까지 패럴림픽은 올림픽에 비해서 인지도가 낮지만, 꾸준히 그들만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패럴림픽의 역사에 걸쳐서 각 국가가 누적한 메달 수를 계산해보면, 올림픽 강대국들이 패럴림픽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대 누적 메달 수로 순위를 나열했을 때, 대부분의 올림픽 선진국들이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눈에 띄는 한 국가가 있는데, 이는 바로 '우크라이나'다.

# 국가 패럴림픽 누적메달수
1. 미국 2360
2. 영국 1823
3. 독일 1807
4. 캐나다 1222
5. 오스트레일리아 1159
6. 프랑스 1120
7. 중국 1034
8. 스웨덴 737

# 국가 패럴림픽 누적메달수
9. 네덜란드 725
10. 스페인 684
11. 오스트리아 677
12. 폴란드 671
13. 노르웨이 612
14. 러시아 501
15.
우크라이나
486
...


체르노빌을 넘어… '패럴림픽 강국' 된 우크라이나

지난 17일 평창패럴림픽 폐막을 하루 앞둔 메달플라자는 노란색 물결로 나부꼈다. 종목별 메달 수여식이 열린 이날 우크라이나 선수가 수시로 시상대에 등장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번 평창패럴림픽에서 금 7, 은 7, 동 8개(총 22개)를 땄다. 금메달 순위는 6위, 총메달 수는 4위였다. 지난달 끝난 동계올림픽에서 금 1개만 따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컸다. 우크라이나는 앞선 2010년 밴쿠버에선 노메달, 2014년 소치에서는 메달 2개만 목에 걸었으나 패럴림픽에선 두 대회 모두 5위권 내에 들었다. 하계패럴림픽도 상황은 비슷하다.

우크라이나는 2016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 2, 은 5, 동 4개(총11개)로 세계 30위권 내에도 들지 못했지만, 같은 해 하계패럴림픽에서는 금 41, 은 37, 동 39 (총 117개)로 세계 3위, 중국과 영국 다음으로 왔다. 이는 스포츠 강대국인 미국(4위)보다도 앞선 결과였다. 과연 무엇이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끼여 있는 이 작은 나라에게 이런 힘을 주는 것일까?

http://image.chosun.com/sitedata/image/201803/20/2018032000209_0

우크라이나는 타 패럴림픽 순위권 내 국가들하고는 확연히 다르다. 인구수로는 중국이나 미국 등과 대적할 수 없다. 패럴림픽에서 항상 우수한 성적을 내는 캐나다와 독일 또한 인구수는 우크라이나와 비슷하다 할 수 있으나, 이 선진국들은 국가 경제력이 우크라이나보다 강하기 때문에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들일 수 있는 자본 또한 월등히 많다. 이런 점들을 미루어 보았을 때, 우크라이나가 첫 패럴림픽 참여인 1996년 이후 20여년 만에 이룬 빠른 도약은 눈여겨볼 만하다.

우크라이나 패럴림픽의 힘은 '인바스포르트(Inva sport·장애인스포츠)'라는 아동과 청소년 장애인의 재활 및 운동선수 양성을 위한 국가 정책 프로그램에서 나온다. 우크라이나 국내에는 현재 수도인 키예프 등 전국 25개 대도시와 80개의 중소 도시에 인바스포르트 관장 기구를 운영 중이다. 아동·청소년 장애인체육학교도 24곳, 장애인을 위한 체육 재활 시설도 148곳이나 된다.

인바스포르트의 시작은 1986년 4월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체르노빌 원전 사고다. 이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불과 140㎞ 떨어진 곳에서 생긴 사고였다. 당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은 사람이 300만명이 넘었고, 총피해액만 1300억달러(약 139조원)에 달했다. 최악의 원전사고 중 하나로 손꼽히는 비극이었다. 체르노빌 사고 후, 모두가 비탄에 젖어 있을 때 나타난 사람이 발레리 수쉬케비치(64), 현 우크라이나 패럴림픽 위원장이다. 장애인 스포츠 육성 시스템 ‘인바스포르트’를 통해 ‘패럴림픽 혁명’을 일군 발레리 수쉬케비치 우크라이나패럴림픽위원장은 ‘장애인 선수의 아버지’로 불린다. 2018 평창 패럴림픽에서도 수쉬케비치 위원장은 패럴림픽 동안 매일 날씨에 관계없이 휠체어를 타고 나와 선수들을 응원했다.

원전사고 때 소아마비 장애인 수영 선수로 활동 중이던 그는 이후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사회의 떳떳한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1990년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1993년 스포츠를 통한 재활로 장애인들이 사회와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청소년 장애 스포츠 시설 법안을 마련했다. 2002년에는 국립패럴림픽센터 설립을 주도했다. 이를 토대로 우크라이나 전역 장애인 아동 조기 운동 프로그램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장애인 스포츠 학교도 일반 엘리트 학교에 뒤지지 않을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자 집안에 틀어박혀 있던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와 세상을 마주 봤다.

"In Ukraine we have set up the best system of physical education, sport and rehabilitation for people with disability. There is infrastructure in all regions of Ukraine, with schools for children with disabilities. This system works and brings results. But the system can't work without people… people who withstand all these problems: lack of money, political crisis, war and all other troubles. And these people are extremely dedicated."

"우크라이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신체적 환경여건, 스포츠, 그리고 재활 치료와 관련하여 최고의 시스템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내 모든 지역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굳건한 사회적 기반 시설 아래에 마련되어 있죠. 이 시스템은 매우 잘 운영되며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지만 시스템은 사람 없이는 운영되지 못합니다. … 돈 부족, 정치적인 혼란, 전쟁과 다른 모든 어려움에 맞서 일어나는 사람들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이고 헌신적입니다."

- 발레리 수쉬케비치의 BBC 인터뷰 중 -

인바스포르트는 2004년 아테네 하계패럴림픽부터 결실을 맺었다. 2000년 시드니 대회 금 3개에 그쳤던 우크라이나는 아테네에서 금 24개(6위)를 목에 걸었다. 이후 2008년 베이징 24개, 2012년 런던 32개, 2016년 리우 41개로 성적이 급상승했다. 외신은 우크라이나의 메달 행진을 '패럴림픽 혁명'으로 묘사한다.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이끌고 평창을 찾은 수쉬케비치는 본지 통화에서 "소질을 보이면 곧바로 재활과 운동을 거쳐 체계적인 선수로 양성한다"고 했다. 그는 보통 100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중 적어도 2명에서 많게는 5명까지가 선수의 소질을 보인다고 한다.

인바스포르트는 선천적인 천재를 찾지 않는다. 이들은 조금의 재능에서 시작해 제대로 된 훈련과 반복, 연습을 통해 장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람들을 찾는다. 선수들은 우크라이나는 패럴림픽의 금메달리스트에게 12만5000달러(약 1억3000만원)의 포상금을 준다. 2018년 현재 한 달 월급 평균이 8382UAH(한화 기준 약 32,6456원)임을 감안했을 때 이는 매우 큰 금액이다. 금메달의 가치는 "장애인이 직업을 갖기 힘든 우크라이나에서 올림픽 메달은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이 된다는 패럴림픽 선수들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패럴림픽은 단순 스포츠 이상이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