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보다 아름다운 완주의 영광

감유민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 알파인스키는 참가 선수의 장애에 따라 플레이트가 한 개인 입식 스키와 좌석이 부착된 좌식 스키 등으로 나뉘어 열린다. 하지만 일반 알파인스키와 동일한 장비를 가지고 경기를 펼치는 종목도 있다. 바로 시각 장애 알파인스키다. 시각 장애를 가진 선수들은 일반 스키를 타는 대신 무선 블루투스 장비로 비장애인 가이드러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슬로프를 내려온다. 그래서 가이드러너는 선수와 같이 소개되고 선수가 메달을 획득하면 자신도 메달을 함께 받을 수 있는 패럴림픽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국내에서 유일한 시각 장애 스키 선수 양재림(29·국민체육진흥공단)에게도 소중한 가이드러너가 있다. 양재림은 몸무게가 1.3㎏인 미숙아로 태어나 산소 과다로 왼쪽 눈 시력을 잃었고, 수많은 수술 끝에 회복한 오른쪽 눈 시력도 비장애인 10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양재림에게 고운소리(23·국민체육진흥공단)는 이름처럼 반가운 존재다. 양재림이 턴을 해야 할 때를 놓치지 않고 말해주는 것이 고운소리의 임무다.

2014 소치패럴림픽 이후 가이드러너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양재림에게 고운소리는 2회 연속 패럴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게 해준 귀인이다. 고운소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번번이 탈락했던 고운소리는 양재림을 만나 비로소 태극마크를 달 수 있게 됐다. 이들은 지난 9일 열린 개회식에서 파트너답게 함께 성화를 봉송하기도 했다. 고운소리가 양재림의 손을 잡고 함께 성화대가 있는 정상을 향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동행'이라는 패럴림픽의 가치를 보여준 명장면이 됐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경기에서 이번 대회는 그리 만만치 않았다. 11일 여자부 시각 장애 부문 슈퍼대회전에서 9위에 오른 것도 아쉬웠지만 13일 열린 슈퍼복합에서는 코스 이탈로 결승선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슬픔을 맛봐야 했기 때문이다. 경기를 마친 뒤 고운소리는 "언니 시야에서 제가 벗어난 것 같다"며 자책했고, 양재림 역시 "실격되기 전까지는 빨랐던 것 같은데 반성이 된다"면서 스스로를 탓했다. 그럼에도 둘은 "내일 준비 잘하자"며 위로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리고 14일 열린 알파인스키 여자부 시각 장애 부문 대회전 경기. 두 선수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1차 시기에서 1분20초81로 9위에 이름을 올린 양재림은 2차 시기에서 1분17초61로 시간을 단축했고 합계에서도 그대로 9위를 유지했다. 순위로만 보면 여전히 아쉽다. 지난 소치패럴림픽에서는 대회전 4위로 메달권 직전까지 가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날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선 만큼 아쉬워만 하기에는 이르다. 두 선수는 이제 오는 18일 열리는 회전 경기를 남겨두고 있다. 양재림은 "슈퍼대회전처럼 빠른 경기를 하고 나면 코스가 익숙해져 두려움이 줄어든다. 실수를 줄여 회전에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강한 의지를 밝혔다. 앞서 강원도 알펜시아 바이애슬론센터에서 열린 장애인 크로스컨트리스키 남자 1.1㎞ 경기에 출전한 신의현(38·창성건설)은 레이스 초반 선두로 나섰지만 최종 순위 6위에 올랐다. 신의현은 경기를 마친 뒤 "남은 경기 중 바이애슬론 15㎞ 종목에서 꼭 금메달을 달성하고 싶다"며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졌다.


이처럼 패럴림픽에서 완주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꼭 메달을 획득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완주만으로도 벅찬 감동과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는 패럴림픽. 2018 평창패럴림픽의 6가지 큰 종목 중, '알파인스키'를 중심으로 완주에 대해서 알아보자. 우선 완주를 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 총 574번의 시도 중 완주에 성공한 시도는 397번에 불과하다. 완주를 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대단한 일이다. 출발선을 나선 약 70퍼센트의 주자만이 결승선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많이 완주를 성공한 나라는 어디일까? 가장 많이 완주를 성공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은 총 72번의 시도에서 50번 완주를 성공해서 최다 완주국이 되었다. 물론 이는 가장 많은 선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캐나다와 NPA(러시아)가 각각 36번, 31번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완주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 적어도 5회 이상의 도전을 한 국가를 대상으로 했을 때에, 노르웨이가 5번의 완주를 모두 성공시키고 1등을, GBR(영연방)이 20번의 완주와 1번의 아쉬운 실격으로 2등을 차지했다. 대한민국은 총 16번의 시도 가운데에서 10번의 완주에 성공했는데, 이 중에는 신의현 선수의 금메달도 들어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알파인스키 완주를 해낸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충분히 훌륭하고, 박수갈채를 받을 자격이 있다.

가장 선수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종목은 무엇일까? 좌식 슈퍼복합은 총 38번의 시도 가운데에서 채 절반도 완주하지 못한 그야말로 마의 종목이다. 두번째로 아슬아슬하게 절반 이상이 결승선을 통과한 알파인 회전 좌식이다.

대한민국의 한상민 선수와 이치원 선수도 알파인 회전 좌식에서 실격의 쓴 맛을 봤다. 입식 슈퍼 복합이 그 뒤를 이었다. 총 46번의 입식 슈퍼복합은 시도 가운데에서 25번의 완주가 나온 어려운 종목이다.

남들보다 몇배는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 가능한 것, 패럴림픽에서 완주가 더욱 빛나는 이유는 이를 위한 선수들의 노력때문이 아닐까? 경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들은 스스로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패럴림픽의 완주가 주는 감동은 도전과 노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