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 next2

PROLOGUE




우리는 이 기사를 통해 1940년대 군함도에서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이 어떻게 끌려왔는지, 어떤 생활을 하였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려 합니다.
기사는 직접 창작된 소설의 진행 장면과 함께, 각 장면들에 대한 진위여부를 파악하며 진행됩니다.
이 기사를 통해 격변하는 한국근대사 속 군함도의 조선인이 겪은 참혹한 현실에 대해 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소설은 군함도에서 실제 벌어진 사례들과 한수산 장편소설 『군함도』, 류승완 감독의 영화 『군함도』를 바탕으로 창작된 것임을 밝힙니다.
또한 배경 자료로 영화 『군함도』의 클립을 활용하였습니다.

Previous next2

SCENE 1 : 군함도를 향해

   섬으로 향했다. 잔잔한 파도를 타고 배가 흘러갔다.
   “일본으로 가면 매일 따뜻한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고 하는 군.”
   일본인과 친하게 지내는 마을 양장점 박씨의 말이었다. 그래 어디를 가나 일본인 이 시대에 반도에 있으나 섬으로 가나 마찬가지 아닌가! 배 위의 이십 여 명의 우리는 이 항해가 빨리 끝나길 바라고 있었다. 모두가 기대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 뿐만 아니라 이미 많은 조선인들이 그 곳에서 돈을 벌고 있다며 한 청년이 말했다. 그는 자기의 지인이 반 년 전부터 이 섬에서 일하고 있고 이미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Previous next2

SCENE 2 : 월급날

   배가 항구에 도착했다. 담당자는 우리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お前らはただついてくるだけでいい。国のために石炭を掘るのだ。(너희들은 가만히 따라오면 된다. 나라를 위해서 석탄을 캐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는 소리인 것 같지만 알 수 없었다.
   “조선말로 하쇼!”
   박씨가 소리쳤다. 고함들이 배를 휘감았다. 우리는 그저 외침이 움직이는 곳으로 향할 뿐이었다. 담당자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내가 자네가 일본을 간다하니, 이걸 구했네. 일본에 도착하면, 높은 사람에게 문서를 보여주면 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하는군”
   박씨의 말마따나, 이곳에서 일하면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나보다. 함께 있던 조선인 모두가 이 문서를 앞으로 내밀었다. 양복 입은 사람이 문서를 처리하며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貴様は今から私たち三菱会社の家族である(너희들은 이제 우리 미쓰비시의 가족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아니 햇빛이 기억이 나질 않아 더 오랜 시간이 흘렀을지도 모르겠다. 박씨가 나에게 월급을 받는 날이라 했으니 한 달이 맞는 듯하다. 우리가 일본놈들한테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렸다.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분명 그들은 84엔을 준다고 약속했는데 동전 몇 개와 월급명세서만이 봉투에 있었다. 월급명세서를 보니 건강보험 1엔 50전, 장비 대여료 2엔, 퇴직적립금 3엔 85전, 국채회비 34엔 그리고 국민저금 42엔을 빼니 65전만 남았다고 한다. 오살할 놈들. 일단 배가 고프니 매점에서 무엇이라도 사먹어야겠다.

Previous next2

SCENE3 : 매점에서의 일

   매점은 신기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허겁지겁 무언가를 사먹는 노동자들과 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관리자가 있다. 여기와서 나와 꽤나 친해진 오씨는 관리자하고 눈을 마주치지 마라고 나한테 경고한다. 우리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물건을 골랐다. '짝'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가 매점을 뒤엎는다.
   “아니 왜 때리고 난리야!”
   “对不起!, 原谅我!(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君たちお互い話をしないように,貴様は私に従ってくるように!(너희들 서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네놈은 따라와!)”
   세 언어가 부딪힌다. 관리자는 중국인의 머리채를 잡고 씩씩거리며 매점을 나간다.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오씨가 상황을 엿들어 우리에게 알려줬다. 청주를 다려던 중국인들이 2전이 부족해서 광주에서 온 김씨에게 2전을 빌리려고 말을 걸었다. 이를 본 관리자가 중국인을 가차없이 폭행하였다고 한다.
   “자네들도 조심해 이상하게 중국 사람들이랑 말하려고만 하면 저렇게 무자비하게 때리더군.”
   오씨가 말했다.
   “저 사람은 어디로 끌려가는 거요?”
   “나도 모르지만 다시는 마주치지 못할 것 같군.”
   오씨와의 짧은 대화를 끝내고 우리는 방안으로 돌아왔다. 청주를 사길 잘한 것 같다. 모두가 한 잔 채 못 마시는 양이지만 조금이나마 피로를 풀어주는 것 같았다.

Previous next2

SCENE4 : 군함도에서 살아가기

   얼굴과 옷자락은 석탄가루와 흙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모두가 서로의 몰골을 거울삼아 자신의 모습을 봤다. 몸을 씻고 싶다. 땀으로 뒤범벅된 몸뚱아리의 악취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면! 다행히 목욕탕이 열리는 날이다. 혹시나 물이 끊길까 우리는 허겁지겁 목욕탕으로 향했다. 목욕탕은 짠내가 가득했다. 그러나 불평불만하는 이는 없었다. 이제는 이 곳의 생활에 모두가 무뎌지고 있었다. ‘섬이라 물이 부족하다’, ‘바닷물이 몸에 난 생채기를 소독해준다’ 몸을 씻는 사람들이 관리자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한 숨을 쉬었다. 몸을 씻어도 씻은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몸에 묻은 흙과 석탄가루를 털어낸 것에 만족해야 했다.

Previous next2

SCENE5 : 끝나지 않는 업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와 친하게 지냈던 전씨가 있었다. 경성에서 가족을 위해 동네 친구인 장씨와 이 섬으로 자원한 청년이었다. 전씨는 엄청 똑똑하고 다른 사람들과 유대가 깊었다. 이 주 전 쯤, 장씨가 하염없이 기침을 했다. 일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부모님에게 편지를 쓸 때도 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장씨를 걱정했으나 장씨는 기침 끝에 괜찮다는 말을 되뇌일 뿐이었다. 장씨가 하루라도 쉴 수 있도록 전씨는 내일 장씨와 근무를 바꿔줄 사람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근무가 비어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갱에 들어가길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랴. 여기는 지옥이다. 한 줄기 빛에 의지해야하는 암흑 속에서 우리는 찌는 듯한 더위를 이겨야 했다. 이곳이 아니면 어디를 지옥이라 부르랴. 그러나 관리자들은 결근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요즘들어 근무시간이 더 늘어났다. 관리자는 인력 부족이라는 핑계를 들어 하루의 절반을 근무 시간으로 정했다.

Previous next2

SCENE6 : 죽어가는 장씨

   우리 셋은 같은 구획에서 일을 했다. 그 날 따라 장씨의 기침 주기가 빨라졌음을 느꼈다. 장씨는 물을 계속 마셨다. 일을 시작한지 한 시간 채 되지 않았는데 장씨의 물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전씨와 나는 장씨에게 물을 나눠 주고 계속해서 괜찮냐고 물었다. 장씨는 계속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장씨의 기침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관리자를 불렀다. 관리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전씨는 손, 발을 써가며 장씨가 계속 기침을 하니, 의사에게 보내주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なぜ私に迷惑を掛けているの?(왜 나를 귀찮게 하는 거야?) 遊ばずに仕事をしろと言う(놀지말고 일하란 말이야!)”
   일본인 관리자는 전씨를 힘껏 걷어찼다. 전씨는 관리자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고불고 계속 말을 했으나 관리자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Previous next2

SCENE7 : 불가능한 탈출

   장씨가 죽었다. 그의 나이 겨우 스물 둘이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장씨와 작별할 시간도 장씨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장씨의 시체를 돌돌 싸매어 자신들이 장례를 치루겠다는 말 뿐이었다. 전씨의 눈에는 인간의 것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그날 밤 전씨는 조용히 나에게 속삭였다.
   “형씨 나와 함께 이곳을 나가는게 어떻소?”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나? 여기는 섬이라고.”
   “다 방법이 있소 어차피 이 곳에 있으면 내 친구처럼 개죽음이나 당할 텐데. 도망치다 죽나 여기서 죽나 뭐가 다르단 말이오?”
   “밖은 전쟁 중이네, 도망친다 한들 어디로 갈 수 있겠소?”
   “어제 관리자들이 하는 말을 들었소. 어제 일본놈들이 미국에게 완전히 박살이 났다고 하더군. 내 생각엔 전쟁의 끝이 얼마남지 않은 것 같단 말이오!”
   이 때 무엇이 나를 망설이게 한 걸까? 관리자에 대한 두려움이었을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분노에 들끓은 전씨가 홧김에 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자고 일어나니 전씨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관리자가 배치한 새로운 노동자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Previous next2

SCENE8 : 지하 1000m, 나의 무덤

   새로운 노동자들은 상당히 말이 없다. 얼굴에 허망함이 가득해보인다. 요즘 나도 근무 시간이 늘어서 피곤했는데 다행이다. 오늘따라 작업장이 상당히 덥다. 땀이 많이나고 습기가 가득한 느낌을 받는다. 눈이 계속해서 감긴다. 어제 전씨와의 대화가 그렇게 길었었나?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다. 이상하게 오늘은 관리자가 드문드문 보인다. 나는 좀 천천히 일하자고 말했지만, 이 두 사람은 처음이라 그런지 힘이 넘치나 보다. 잠깐이나마 숨을 돌리려고 뒤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똑’ ‘똑’ ‘똑’
   이마에 물이 떨어진다. 작업장 여기저기에서 물이 떨어진다. 힘들어서 목이 말랐는데 잘됐다. 혓바닥을 천장에 갖다댔다. 짠내음이 입안에 골고루 퍼진다. 다시 힘을 내서 일을 해야겠다. 언제 관리자가 올지 모르니 길게 쉴 수는 없다. 곡괭이를 들었다.
   ‘쾅’ ‘쾅’ ‘쾅’ ‘쾅’ ‘쾅’ ‘쾅’
   큰 돌을 뽑았다. 돌 사이로 물이 흘러내린다. 작업장 내에 굉음이 쏟아진다.
   “이게 무슨 소리요?”
   뒤를 돌았다. 왜 아무도 없지?
   “왜 아무도 없는게요?”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된 것임이 분명하다. 허리까지 검은 물이 차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