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로나19 시대: 코로나 이후의 예술

양한빛



“아무 쓸모가 없어진 사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면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가 재조명받았다. <페스트>는 페스트가 창궐하며 폐쇄된 프랑스의 한 도시 ‘오랑(Aran)’에서 벌어지는 비극과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 소설이다.

<페스트> 4부에는 코타르와 타루라는 인물이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라는 오페라를 관람하러 가는 장면이 있다. 이 오페라단은 공연차 시에 들렀다가 갇힌 자들이며 일주일에 한 번 오페라를 재공연하는데, 아비규환 속에서도 여전히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르페우스 역을 맡은 배우가 페스트로 무대 위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 코타르와 타루는 그 광경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은 당시 그들이 겪고 있는 삶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무대 위에는 전신의 관절들이 풀려 버린 광대의 모습으로 분장한 페스트, 그리고 관람석에는 붉은 의자 덮개 위에 잊어버린 채 놓고 간 부채며 질질 늘어진 레이스 세공품들의 모습으로 지금은 아무 쓸모가 없어진 사치, 그것이 바로 그들 삶의 이미지였다. …


카뮈는 2차 세계 대전을 통해 경험한 부조리에서 <페스트>를 착안했다. 코로나로 야기된 일련의 사태 역시 준 전쟁 상황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다. 전쟁이 일어나면 예술은 말 그대로 죽는다. 생존권, 기본권조차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하물며 ‘예술’이라니, 너무나 사치스럽게 들릴 뿐이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거치는 동안 각종 예술 작품이며 갈래가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사라졌고 이에 예술사는 무수히 뒤집히고 변화했다. 그러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조차 오랑 시민들이 오페라를 관람하러 간 것처럼, 세계 대전이 끝나고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기도 한 것처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삶은 계속되고 인간은 예술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누군가 무대 위에서 사망하는 순간부터 예술은 ‘아무 쓸모가 없어진 사치’가 되고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전처럼 예술을 하고, 즐길 수 있을까.



젊은 예술가의 슬픔


페미니즘 연극팀 ‘메두사’의 대표를 맡고 있는 신영채 씨. ‘메두사’는 비서울대생도 속해 있으나 기본적으로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페미니즘 연극 동아리이다. 신 씨는 올해 3월 ‘덕질이 다른 차원(이하 ’덕다차‘)’이라는 극에 배우로 출연하기로 했었다.

“메두사는 항상 창작극을 올려왔고, ‘덕다차’도 창작극이었다. 작년 11월에서 12월 정도부터 대본을 쓰기 시작했고 1월쯤부터는 연습에 들어갔다. 캐스팅도 완료되고 다른 스태프도 모집해서 열심히 준비하던 도중에 코로나 사태가 더 심각해졌고, 2월쯤에 (공연장이었던) 서울대 인문소극장 측에서 연락이 왔다. 공연이 3월 셋째 주에 예정되어있었는데 3월 공연을 다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상황이 호전된다면 4월이나 그 이후에 공연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그렇게 연습이 중단됐다. 그런데 4월에 심해지면 심해졌지 더 좋아지지는 않아서 4월 예약도 다 취소됐고. 그럼 ‘우리 방학에라도, 9월에라도 올려보자’ 했는데 (연습실인) 두레문예관도 지금 아예 폐쇄된 상태다.”

신 씨에 의하면 코로나 이전에는 공연팀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주 4회는 연습했다고 한다. 시간 역시 공연팀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한 번 연습이 짧으면 서너 시간, 길면 일곱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그는 “돈이 없는 게 제일 크다”라며, “사실 프로극단이면 어느 정도 자금이 있을 테니 외부 공연장이나 연습장을 대여할 수 있을 텐데 아마추어 동아리 극단의 경우에는 돈이 없다 보니 학교에서 지원하는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게 다 막혀버리니까 방법이 없었고, 아무래도 안전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매년 학교에서 인문대 외국어 연극제를 하는데 그것도 다 취소됐다고 들었다. 몹시 어려운 상황이다. 사실 인문소극장만 열리면 어떻게든 해볼 텐데 돈이 없어서….”

이런 무기한 연기 상황에 그는 ‘덕다차’를 내년에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메두사에서 페미니즘 연극제에 출품한 ‘메갈리아의 딸들(이하 ‘메딸’)’이 당선되면서 연극활동을 이어갈 수는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실 ‘메딸’도 4월까지 모든 걸 확신할 수 없었는데 페미니즘 연극제에 올리면 공연장을 대관해준다고 해서 7월에 하게 됐다. 그런데 연습실은 신림동 쪽에서 돈을 내고 빌려서 쓰고 있다. 지금까지 메두사는 펀딩이나 학교 지원금으로 자금을 충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학교 지원금은 관악구 내의 공연장으로 범위가 좁혀져 있고, ‘메딸’은 신촌에서 올라간다. 물론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여러 루트가 있고 (실제로) 여성예술 관련 지원금을 받았지만 넉넉하지는 않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존 메두사 공연은 무료였지만 이번에는 티켓값을 받는 유료공연이기 때문에 자금을 일부 충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좌석 수가 한 공연 당 25석 정도로 줄어들면서 티켓값을 벌기도 힘들어졌다.

“그래서 ‘메딸’ 팀에서도 ‘공연진 한 명이라도 확진이 나면 공연 망한다, 공연 못 올린다’고…. 그런데 이게 안 걸린다고 안 걸릴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웃음) 아무튼 각별히 조심해달라고 하더라. 이번에 페미연극제 안전수칙에도 보니 웬만하면 객석과 가까이하는 동선은 만들지 말고, 최소한 대사는 치지 말자는, (금지보다는) 권고사항 느낌이긴 한데. 굉장히 자유도도 떨어졌다고 할 수 있겠다.”

신 씨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는 점을 가장 힘든 이유로 꼽으며 ‘두렵다’는 말을 전했다.

“아무 계획을 짤 수 없다. 예를 들어 공연 말고 다른 행사를 기획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것도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시점 정도면 안전할지…(한숨)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메딸’ 연습팀도 매일 발열체크하고 손소독제를 수시로 쓴다는데. 서로 다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밀접하게 접촉하면서 활동하는 거니까 계속 불안함을 안고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사람들 개인에 있어서도 안전한 상황은 아니니까.

사실 돈이 있었으면 좋겠다. 돈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었을 거다. 학내극단이라서 가난한 것도 있지만 프로극단도 다르지 않은 상태일 것 같고 그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메딸’팀도 이번에 (유료공연이라) 임금을 받고 일하는데 배우라든지 연출이라든지, 다들 최저시급도 안 될 거다. 늘 그래왔던 공연계 관행이기도 하지만 더 힘든 상황이 되었고 그게 제일 슬프다.”


메두사 <2020 메갈리아의 딸들> 포스터



코로나19 이전의 예술은 다시 올 수 있을까


예술 향유자 혹은 소비자 입장에서도 고민은 많다. 기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예술 분야가 원래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가뜩이나 어려운 예술계가 바이러스에 치명상을 입은 셈이다.

한국 영화 산업은 개중 대중적이고 돈이 모이는 분야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서 발표한 수치에 따르면 한국에서 현재까지 천만 관객을 모은 영화는 30편에 달하지만, 4월 영화 관객 수는 전년 대비 93% 감소하면서 2004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4월 전체 극장 매출액도 전년 동월 대비 1057억 원 줄어든 75억 원에 불과하다(5월 14일 기준). 유수의 영화제들이 온라인 영화제로 전환하거나 취소되었으며 독립영화관을 지키자는 “save our cinema” 캠페인이 시작되기도 했다. 영화계가 이 정도라면 다른 산업이 얼마나 위축되어 있을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연극이나 뮤지컬, 음악 콘서트처럼 현장감이 강조되는 공연예술계는 대안을 마련하기 더욱 쉽지 않은 실정이다.

업계 사정이 이러해 이전처럼 다양한 작품이 창작되지 못하다 보니 문화생활을 향유하지 못하는 수많은 젊은이 또한 타격을 입었다. 기자 본인 또한 예술작품을 즐기며 대학에서 예술과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선택지가 한없이 좁아졌음을 수시로 체감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 이후로 예정되었던 여러 공연이 줄줄이 취소된 것은 물론이요, 음악방송이나 각종 콘서트가 ‘무관중’으로 진행된 경우도 허다했다. 한국음악콘텐츠협회가 운영하는 공인 음악 차트인 가온차트에서 나온 4월 리뷰 칼럼에서도 이런 현상을 짚고 있는데, 칼럼을 작성한 김진우 수석연구위원은 ‘음원 이용량 감소 현상은 신규 음원의 양적 감소는 물론 정상급 음원 출시 부재에 따른 결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외부업체를 고용해 진행하는 방역 대책도 직원들에게 부담이다. “KF80 마스크를 쓰면 숨 쉬는 것도 힘들어요. 그런데 배송 물품들 옮기고 포장하는 것도 모자라 거리까지 유지해야 하니까 미치는 거죠” 심지어 이 업체가 내놓은 초기 방역 대책에는 업무 중 물 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도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올 수 없다’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발표대로 코로나 이전처럼 예술을 즐길 날 또한 오지 않는 것일까. 앞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무엇일까. 혹은 과연 그것이 가능하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