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도곡역의 한 스터디 카페에서 송지연(29) 씨를 만났다. 지연 씨의 일상은 코로나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점이 별로 없었다. 평일 9시부터 6시까지 복지관에 출근하고, 퇴근 후에는 거의 언제나 집에서 드라마를 본다. 주말도 집에 있는 건 다르지 않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가족 없이 혼자 살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연 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이하 그룹홈)에서 살았다. 취업한 이후부터는 가족들과 같이 살다가 올 3월부터는 자립형 그룹홈에서 시범적으로 석 달 정도를 혼자 살았다. 그리고 6월 초 드디어 독립했다. 비록 “부모님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이고 부모님이 하시는 편의점 위층 집”이지만 독립을 꿈 꾼 지 10년 만에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 기뻤다.
장애인 인권단체 ‘노란 들판’의 정진영(24) 활동가는 그룹홈과 체험홈이 최근 논의되고 있는 ‘탈시설 운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정 활동가는 “탈시설 운동은 발달장애인 거주 시설을 비롯한 ‘시설’들이 시설 수용자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고 자립능력 없이 무기력하게 살게 한다는 문제의식을 반영한다”며 “그룹홈과 체험홈은 격리시설과 달리, 거주자와 사회의 거리를 좁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시설 수용자의 자립 의지와 생활 능력 등을 고려해 심사를 거친 다음, 자립 생활 능력이 높으면 그룹홈, 상대적으로 낮으면 체험홈에서 거주하게 된다.
지연 씨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모산입구역에 있는 장애인 복지관에서 바리스타, 식당 배식, 볼펜 부품조립 작업 등 직업훈련을 받았다. 3년 전부터는 복지관에 정식으로 취업해서 독서 토론 등 다른 발달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하지만 복지관이 휴관해 다른 발달장애인 참여자들이 등원하지 않으면서, 올해 기획한 프로그램이 전부 무산되었다. 지연 씨가 다니는 복지관은 5월에 잠깐 열었다가 확진자가 많아져 다시 문을 닫았다. 지연 씨는 올해부터 복지관에 외부 강사를 초청해 유튜브를 배우고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발달장애인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상 브이로그”를 찍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외부 강사 초청이 어려워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지연 씨는 “코로나 때문에 프로그램도 못 하고 계속 미뤄져서 모든 게 다 속상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2월 20일 고향인 대구를 방문한 제주 해군 A 씨(22)가 코로나 양성 확진을 받았다, 이틀 후인 22일, 국방부는 코로나의 군대 내 유입을 막기 위해 확진자가 발생한 제주도 지역의 부대뿐만 아니라 전 군 장병들의 휴가를 제한했다. 철원에서 군 복무 중인 정회창(21) 씨의 휴가도 4개월 동안 미뤄졌다. 회창 씨는 “보통 휴가 한 달 전에 휴가 일정을 정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3일 전 갑자기 취소되었다”며 “언제 나갈 수 있다는 기약이 없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군대에서 유일하게 제공된 여가시설인 노래방, PC방, 체력단련실이 모두 폐쇄되면서, 무료하게 핸드폰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회창 씨는 군대 안에서 이뤄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군대 안에서도 지켜야 한다 해서 외출, 외박, 휴가가 다 통제되고 노래방, pc방, 체력단련실도 통제”되었지만, 여전히 “화장실과 주방을 합친 원룸 하나 크기 생활관에 10명이 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2m 거리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회창 씨는 “애초에 밖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검사하면서 막아야 하는 거 아니냐”라며 “외부랑 접촉 없이 병영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에 대해 노래방을 막고, PC방을 막아봤자 어떻게 침투를 하냐.”며 불만을 표했다. 군대는 갇힌 공간이고, 계속 같은 풍경, 같은 사람들만 보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이에 더해 통제가 계속되니 점점 우울하고 자유를 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지난 5월 8일 정부의 ‘생활 속 거리 두기’ 전환에 발맞춰 장병 휴가를 정상 시행하기 시작했다. 회창 씨도 6월 19일, 그동안 미뤄진 만큼 13박 14일이라는 긴 휴가를 받아 나왔다. 그러나 정작 휴가를 나와도 갈 수 있는 곳이 제한되어 아예 누나와 함께 제주도로 떠나기로 했다.
회창 씨뿐 아니라, 최근 휴가지로 제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의 제주 관광통계에 따르면 2020년 5월 한 달 동안 제주를 방문한 관광객은 76만 8천 명(768,102명)에 달한다. 그중 내국인은 765,616명이고 외국인은 2,486명이다. 2020년 6월 24일을 기준으로 하면 6월 관광객은 675,829명이다. 작년 6월 관광객(1,064,296) 수보다는 36.5% 감소한 수치지만, 제주도민들에겐 큰 불안으로 다가온다.
6월 25일 00시를 기준으로 제주도 누적 확진자는 19명이며 그중 격리해제자 수가 16명이다. 19명 모두 도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감염되었거나 타 지역 방문 후 확진되었다. 제주 서귀포시에 사는 신지수(22) 씨는 “열이 나는데도 해열제를 먹고 제주를 여행한 사람이 있다는 기사를 보고 분노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재난안전대책본부의 22일 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는 B 씨가 15일 오후 2시 50분경 제주도에 입도하여 3박 4일간 머문 다음 18일에 돌아갔다. B 씨는 제주도에 온 다음 날인 16일부터 감기 기운을 느꼈으나, 이틀 동안 해열제 10알을 복용하면서 관광지와 식당 10여 곳 이상을 방문했다. 지윤 씨는 “제주도에서는 원래 밖에서는 마스크를 잘 쓰지도 않았고 마스크 구하기도 어렵지 않았지만, 관광객이 많아지며 마스크를 쟁여두는 사람이 많아졌다”라고 말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를 준비 중인 조수현(27) 씨는 코로나로 인해 시험이 취소되거나 혹시 자신이 감염되어 시험을 못 보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코로나는 무증상 확진도 있다고 해서, 내가 혹시 무증상 감염 중인 거면 어쩌지? 그래서 시험 못 보면 어떡하지? 걱정될 때가 있어요.” 매일 많은 사람이 오가는 학원과 자습실, 카페에서 공부하는 수현 씨에겐 마스크를 쓰는 것이 감염으로부터 거리 두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수현 씨는 이제 마스크를 안 쓰는 게 더 어색할 정도다. 또한 수현 씨에게 마스크를 쓰는 것은 방역 외에도 “마스크를 쓴 사람 중 하나”가 된다는 점에서 안전감을 느끼게 했다.
2015년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만 19세 이상 경기도민 1,500명(남성 758명·여성 74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 따르면 성인 여성의 25.9%가 '길거리(도로·지하철 등)에서 성추행을 당해본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으며, 35.7%는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할까 봐 두렵다고 답했다. 2016년 한국성폭력상담소가 공공장소에서의 괴롭힘으로 접수된 상담 사례 123건을 분석한 결과 여성들은 주로 길거리(40건)에서, 추행과 언어적 성희롱을 경험했다. 추행(90건)은 주로 길거리(41%)와 대중교통 시설(21%)에서, 언어적 성희롱(16건)은 주로 길거리(50%)와 대중교통 시설(17%)에서, 촬영(14건)은 화장실(43%)에서 일어났다.
수현 씨는 “요즘엔 좀 적어진 것 같은데, 공공장소에서 사진 찍어서 자기 SNS에 올리고 이런 경우도 있었잖아요. 막 외모 평가하고 그 밑에다가. 마스크를 쓰니까 그런 걱정이 없어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대학생 박세현(23) 씨도 “마스크를 쓰니까 지하철 탈 때 술 마신 사람이나 말 함부로 하는 사람이랑 눈 괜히 마주쳐서 불편한 소리 듣는 불쾌한 경험에서도 좀 안전한 느낌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그림 1] 회창 씨 가족의 주말농장 사진 (출처: 정회창 씨 제공)
3박 4일 여행을 마치고 24일 제주도에서 돌아온 회창 씨는 남은 휴가 중 며칠 동안은 가족과 함께 경기도 안성시 주말농장에서 보내기로 했다. 회창 씨는 “PC방, 영화관도 안 하니 자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라며 웃었다. “아버지가 고등학교 선생님이신데 학생들이 안 나오다 보니 할 것도 없어서, 일과 마치면 바로 농장으로 가셔요.”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예 컨테이너로 간이집도 만들었다. 부모님과 누나까지 가족들이 농장일에 몰두하다 보니, 몇 가지 작물만 기르던 농장은 이제 닭장도 생겼다. 회창 씨는 “코로나로 사람이 많은 곳에는 못 가지만, 농장일을 하며 가족과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수 있다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