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전 세계의 생활방식은 전례 없는 변화를 맞이했다. 2월 23일 국내 감염병 위기경보 수준이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상향된 이후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이루어진 지 어언 4달째다. 이런 초유의 사태에 우리 교육의 현장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교육부는 3월 27일 초중고특수학교에 대해 체계적인 원격수업을 위한 운영 기준안을 마련하며 새로운 형태의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비하였고 대학들도 하나 둘 비대면 강의를 실시할 것을 공지했다. 한국리서치가 5월8~11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과 대비해 가장 많이 증가한 비대면 서비스 이용 항목은 실시간 원격 영상 시청이었다.
▲ 출처: 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제80-1호) 결과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5월 15일 발표한 ‘대면 수업 시작 예정일 현황’에 따르면 사립 및 국공립 4년제 대학 193개교 중 85.9%인 165개교가 1학기 전체 또는 코로나 안정 시까지 온라인 수업을 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출처: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대면 수업 시작 예정일 현황 (20.05.15)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이하 사총협)의 온라인 강의 관련 참고자료에 따르면 2019년 온라인 강좌 수는 전체 604,419개 중 5,606개로, 고작 0.9%를 차지했다. 급격한 상황변화에 학교들은 0.9%의 경험을 가지고 전면 비대면 강의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사총협은 학생의 안전 및 건강권, 그리고 교육의 지속성과 질 보장을 위해 2020년 3월 20일 교육부에 ‘코로나19 관련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입장 및 건의사항’을 제출했다. 사총협은 집합교육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하여 시행할 것, 집합교육 재개 시 안정적인 마스크 공급망을 구축할 것, 대학평가의 부담을 완화할 것 등을 건의했으며 코로나19관련 방역 및 통제 등에 투입된 비용과 온라인 원격강의 제작‧운영에 소요된 비용에 대하여 정부의 재정 지원을 요청했다.
학기 전면 비대면 강의라는 초유의 사태에 돌입할 준비가 되는 듯 했으나 긴급히 진행된 과정 속 학생들의 목소리는 반영될 수 없었다. 이에 여러 혼란과 불만이 일었으며 대응할 틈 없이 최초의 비대면 학기는 끝이 났다.
서울 소재 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인 제보자 A씨는 비대면 학기에서 학습, 평가 상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한 교수님은 공지 없이 3주 동안 수업을 올리지 않았고, 학생들은 건의 끝에 학사과에 전화를 한 결과 다음날부터 “주마다 2주치 분량의 수업을 올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학기 말에는 평소에 실시간 강의를 하지 않던 수업의 기말고사 시험 하루 전 날 “시험 당일 실시간 카메라를 켤 테니 건의사항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공지가 올라왔고, 학생들의 건의 끝에 카메라를 켜지 않겠다는 수정 사항이 다음날 안내되었다. 게다가 해당 시험은 오픈북이 허용되는 형태가 아니었으나 시험 직후 어떤 학생이 익명 게시판에 ‘이 시험 오픈북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글을 작성하며 부정행위가 발생했음이 드러났다. 또 인터뷰 당일 (6월 24일) 있었던 시험시간에도 부당한 일이 발생했다. 정해진 시간에 기말퀴즈 링크가 열리지 않았지만 교수님이 학생들의 연락에 응답하기까지는 15-20분이 걸렸다. 게시판에 올라온 시험문제에 대해 비밀 게시글로 답을 적어내는 형태로 수정이 됐으나 시험 종료 시간은 30분 가량 미뤄졌고, 이후에 다른 시험이 있거나 다른 일정이 있는 학생들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시험을 마쳐야 했다.
A씨는 “사이버 강의는 대학에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비대면 강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기술은 많이 있는 상황”이라며 이러한 학습권 피해는 준비가 얼마나 되었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2학년 B씨는 전공 수업이 전부 실습으로 진행되는 건축공학과에 재학 중이다. 실습은 건축모형을 실제로 만들어 교수님들께 보여드리며 비평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학기에는 사진을 찍어 평가 받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 보는 게 아니다 보니 다양한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크리틱이 질적으로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또 레이저 등 학교 실습실에 있는 장비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고 각자 집에서 모형을 만들기에 공간적인 문제 때문에 질이 떨어진다고 어려움을 밝혔다.
B씨는, “(교수님들께서) 여러 시도도 많이 하고 소통도 많이 하셨지만 교수님들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기술적인 부분, 구조적인 문제가 가장 커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불어 “실습 수업을 진행하는 학과에서는 설문조사 등을 통해서 어떤 불만사항이 있고 어떤 것이 학습권을 침해하는지에 대해 학교측에서 파악을 하고 주마다 개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어야 하지 않나”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국내 대학생 100여명을 대상으로 6월 10일부터 24일까지 진행한 설문 결과, 비대면 강의 전환으로 인해 학습권이 침해되었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매우 그렇다(24.5)”는 응답과 “그렇다(40.8)”는 응답은 전체의 65.3%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72.4%는 학습능률이 감소했다고 생각했다.
응답자의 절반은 인터넷 연결 문제로 강의 내용을 매끄럽게 듣지 못한 경우를 경험했으며 인터넷 문제로 사이버강의실에서 튕겨 나온 경우도 약 40%에 달했다. 강의자의 인터넷 문제로 인한 강의 진행 방해(28.6)와 중단(26.5)도 빈번했다. 강의자의 비대면 강의 프로그램 사용법 미숙으로 인해 수업 진행이 더디거나 예정된 진도를 다 나가지 못한 경우는 34.7%에 달했다.
성적의 부당함을 겪은 사례도 조사되었다. 인터넷 연결 문제로 지각/결석처리가 되어 실질적으로 성적에 부당한 처리가 된 경우가 32건, 퀴즈/시험을 치르는 도중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 피해를 본 경우가 27건 보고되었다.
실습위주 전공 침해사례 조사에서 비대면 혹은 이론 수업으로 대체된 실기과목에 대해 약 42%는 “해당 과목에서 학습해야 하는 내용을 숙지하지 못했다”고 느꼈다. 더불어 “악기를 불어야 하는데 비대면 실습수업으로 인해 마땅히 불 곳이 없었음”, “실습을 유튜브 동영상 시청으로 대체하여 실습의 의미를 살리지 못함”, “팀 프로젝트가 거의 모든 전공마다 있는데 강의만 비대면이고 팀플은 대면으로 진행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등의 의견이 있었다.
기타 학습권 침해 사례로는 “2-3년전 녹화해둔 강의자료를 그대로 재활용 함” “읽을거리와 대체 과제만으로 한 학기 수업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는데,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 모르겠음” “출석체크를 5주 동안 안 하신 경우, 중간고사 공지를 일주일 앞두고 주신 경우가 있었음” “질의응답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아 답답함” “집중을 잘 할 수가 없음 하지만 이해할 때까지 다시 학습할 수 있어서 공부는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음” 등이 있었다.
모두가 예상할 수 없었던 비대면 학기의 여파에 대해 우려는 처음부터 존재했다. 3월 30일, 반값등록금국민운동본부와 ‘코로나 대학생 119’는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코로나19관련 대학생 피해사례 발표회를 열어 등록금 일부 환불과 입학금 전액 환불을 주장했다. 6월 2일 경북 경산지역의 등록금 반환 요구 행진, 8일 국회의사당 앞 등록금 반환을 촉구하는 전국총학생회협의회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대학 등록금 반환은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부분이고 (정부가) 지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교육부 또한 6월 21일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등록금 문제는 각 대학이 학생들과 적극 소통하고 협의하여 해결해야 하며, 교육부는 학생 개인에 대한 직접적인 현금 지원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설문에 응한 100여명의 학생 중 80여명은 학습권을 보장할 주체는 대학이라고 답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 제보자 B씨는 “(등록금 반환에 대해) 교무부가 총학생회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확한 이유를 내놓지 않고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식으로 계속 회의를 미루고 학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게 아쉽다”며 학교와 학생간의 소통의 문제를 지적했다.
지난 15일, 건국대가 등록금을 일부 반환하기로 결정하며 사실상 첫 등록금 환불 사례가 나왔다. 등록금 반환은 일차 과제일 뿐이다. 코로나19 국면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불가 한 상황에서 학교는 비상대책을 마련할 때 학생들의 목소리를 누락시켜서는 안 된다. 학생들과의 소통 없이 마련한 응급조치는 이미 한차례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우리가 지난 몇 개월 동안 무엇을 체험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실패했는지 세심하게 분석하여 다음 재앙에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