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학사 서울관입니다. 우리 학사 임시 휴관을 정부 시책에 따라 다음과 같이 알려드리오니 양해바랍니다. (1) 휴관 기간;; ‘20.3.26(목) 19:00 ~ 20.4.5(일)14:00 -귀향일시 : 3.26(목) 저녁 7시 이전-입실 일시 : 4.5(일) 오후 2시 이후...”
경남 창원이 고향인 여건학(23) 씨에게 복학 첫 학기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서울 거처 선택이었다. 자취, 기숙사, 지역 향토학사, 세 가지 중 고민하던 그는 경상남도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향토학사를 택했다. 한 달 15만 원이라는 압도적으로 싼 월세와 하루 세끼를 무료로 먹을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비록 수서역 부근에 위치한 학사에서 학교까지 통학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로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감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군 전역 후 새로 맞는 캠퍼스 라이프, 모든 게 다 잘 되리라 생각했던 그에게 3월 24일, 학사 입주 2주가 되지 않은 시점에 들은 공지사항은 청천벽력 같을 수밖에 없었다.
여건학씨, 그는 한순간에 집을 잃고 거리를 헤메는 소공녀가 되었다.
당장 학사 행정실에 내려가 사정을 얘기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정부 시책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 방안이다.” “어차피 대학 수업도 비대면으로 하지 않느냐.” “귀향 후 휴관이 해제되면 다시 올라와라” 하지만 여건학씨의 사정은 행정실 입장과는 조금 달랐다. 서울에서 학교 근로장학생 출근과 아르바이트가 있었던 그는 당장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좀 당황스럽기도 하고. 시간을 넉넉히 준 것도 아니고 이틀 전에 통보를 받았으니까요. 답답했죠. 코로나19 때문에 상황이 좋지 않은 것도 알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알고 있는데, 이미 학생들 다 3월 중순에 입주했는데 ‘우리 휴관하니까 나가라’ 이렇게 얘기하는 건 다소 무책임한 조치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어요. 입사생 입장은 배려하지 않는 느낌. 저처럼 근로 장학이나 아르바이트 때문에 서울에 있어야 하는 학생들은 당장 집을 잃어버리는 거잖아요.”
학사 행정실과 의미 없는 입씨름도 잠시, 당장 그 다음날도 학교 근로 장학 출근이 있던 그는 당장 서울에서 묵을 곳부터 찾아야 했다. 여건학씨는 필요한 짐을 챙겼다. 학사 입주할 때 챙겨온 배낭 하나, 크로스백 하나, 기내용 캐리어 하나에 당장 입고 다닐 옷 몇 벌과 세면도구들, 노트북과 책 몇권을 욱여넣었다.
남명학사 서울관 휴관 안내 통보. 이는 휴관 이틀 전인 3월 24일 공지되었다.
3월 25일, 여건학 씨는 오래 알고 지낸 후배에게 연락했다. 학사가 휴관해서 며칠만 자취방에 재워줄 수 있냐고 간신히 물었다. 흔쾌히 수락해준 후배 덕분에 며칠 잘 곳은 구할 수 있었다. 사흘이 흐른 뒤엔 소식을 전해들은 친척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당장 갈 곳이 필요하면 친척집으로 와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마침 좁은 후배 원룸에 오랫동안 지내는 게 미안하기도 했고, 일주일만 지나면 학사 휴관이 끝난다는 생각에 친척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딱 일주일이면 다시 학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19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4월 3일, 4월 5일까지였던 휴관은 4월 12일까지로 연장이 됐고, 4월 9일, 다시 대학별 집합 수업 3일 전으로 무기한 연장됐다. 누적 확진자 수가 만 명이 넘었고, 각 대학에선 한 학기 전체 비대면 강의가 논의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여건학 씨는 고민 끝에 다시 짐을 챙겨 거리로 나왔다.
“이모랑 이모부께서는 재택근무를 하고 계시고, 초등학생 포함 사촌 동생이 3명이나 있는데, 모두 개학이 연기돼서 집에만 있었어요. 근데 제가 근로장학생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계속 야외활동을 해야 했기 때문에, 혹여나 다들 조심하는데 내가 폐를 끼치지 않을까. 뭐 그런 복합적인 게 여러모로 고민이 돼서 나오게 됐죠. 혹시나 저 때문에 가족이 코로나라도 걸리면 안 되니까요.”
항상 여건학씨와 함께한 가방들. 여건학씨가 소공녀 생활 당시 직접 찍은 사진.
그렇게 다시 친구의 자취방 몇몇을 전전했다. 배낭을 메고, 한쪽 어깨엔 크로스백을 걸고,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이리저리 잘 곳을 찾아다녔다. 며칠 후 학교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인은 비대면 강의 전환 후 곧바로 귀향했고, 지금 자취방이 비어있으니 거길 써도 좋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건학씨는 월세 일부분을 내고 학교 근처 선배 원룸에 정착하게 되었다. 복학 후 3월 초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 한 거처였다. 4월 15일. 거리로 내몰린 후 소공녀 생활을 끝마친 날이었다.
서울 내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들을 위한 향토학사는 광역자치단체 기준 경기, 강원, 충북, 전북, 남도(전남), 탐라(제주), 경남 총 7곳이다. 그 중 충북학사와 탐라학사를 제외한 5곳이 입사 직전 입사 날짜를 미루거나 입사 후 휴관 조치를 단행했다. 입주하지 못했거나 입사 후 퇴거 조치된 인원만 3,000명이 넘는 규모다. 학사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발표와 대학별 비대면 강의 계획으로 인한 조치임을 밝혔으나, 별다른 대책은 마련하지 않은 채 급하게 일방적인 조치만이 내려졌다.
비 서울권 출신 학생들의 고충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본부의 비대면 시험 권고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강의가 대면 시험 기조를 유지 중이다. 1~2주 정도의 시험 기간을 고려하면, 학사 조치에 따라 지방에 귀향한 학생들은 시험 기간 동안 단기로 머물 곳이 필요하다. 비 서울권 거주 학생들에게 이는 결코 작지 않은 부담이다. 또한 서울대학교 기숙사 미 입주자들은 하루도 기숙사에서 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3, 4월 기숙사 등록금의 70%만을 환급해주어, 기숙사 환불 및 행정처리 문제가 학생사회 내 주요 사안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 주소는 지방이라도 생활권은 모두 서울에 있는데 그걸 한순간에 놓고 가기는 힘들어요. 이런 부분에 대해 꾸준히 주장해도 들어주는 곳이 없고... 이렇게 학생들이 쫓겨나게 되면 결국 또 서울 어딘가에서 잘 곳 찾아 돌아다닐 수밖에 없는데, 방역이나 학생 관리 차원에서 신경을 쓰는 게 더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도 실효성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하죠. 또 한 학기동안 대면수업을 하겠다, 안하겠다. 학사 휴관을 하겠다, 안 하겠다. 이런 조치가 한 학기 내내 번복이 많이 되어서, 이런 점에서 지방에 있는 학생들은 기숙사 임시퇴거를 해야 할지,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야 할지, 아니면 아예 고향에 내려가 버려야 할지, 여러모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환경인 거죠. 아마 대면 시험을 치는 수업이 있기 때문에 곧 귀향했던 학생들도 다시 올라와서 잘 곳을 찾아야 할 거예요. 이것도 서울에 집 없는 학생들에겐 마냥 쉬운 문제는 아니죠.”
여건학씨는 6월 13일 학교 주변 원룸을 계약해 이사를 앞두고 있다. 자취방을 빌려준 선배가 대면시험 및 개인 사정으로 인해 곧 상경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입주 불가능하다는 학사의 입장은 달라진 것이 없어 결국 퇴사 신청서를 냈다. 여건학씨는 학사에서 친구 집, 친척 집을 돌아 결국 자취방 계약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건학씨가 아닌 코로나 시대의 많은 소공녀들은 아직도 집을 찾아 먼 타지를 여행 중이다.
“사실 저는 운이 꽤 좋았다고 생각해요. 정말 필요한 순간에 주위 좋은 사람들이 도움을 많이 주셨기 때문에 정말 엄청나게 큰 위기는 없이 2020년 1학기를 보내고 있지 않나 싶어요. 근데 이건 정말 말 그대로 운이 좋은 거고,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 중에는 저만큼 도움을 받지 못한 분들도 많았을 거예요. 이런 분들을 위해서 언젠가 다시 이런 팬데믹한 상황과 마주했을 때,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4월 11일 질병관리본부 정례 브리핑에서 권준욱 부본부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코로나19시대 이후의 세상은 정말 다른 세상이다. 누구에게나 그랬겠지만, 서울로 상경한 청춘들에게 2020년 상반기는 유난히 따뜻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시대, 타의로 소공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코로나 시대 이후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아늑한 지붕 아래서 하루를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