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코로나 19는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 ('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 까지 만들어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경제난으로 인한 우울증에 주목한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다. 경기도가 지난 3월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경기도민의 59%가 코로나19로 일상생활에서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다. 여성(71%)과 70대 이상 노년층(74%)에서 더 높았다.
특히 고강도의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주변 지인들과의 교류가 줄어들면서 ‘정서적 소통’ 부족을 호소하는 도민(55%)도 절반이 넘었다. 현실을 반영하듯 전화나 문자, SNS 등 온라인 소통 빈도가 이전보다 ‘늘었다’는 응답이 높게(40%) 나타났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영화 제작자이자 억만장자인 스티브 빙(55)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아파트에서 추락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난 23일 이 소식을 보도한 외신들은 그의 측근 말을 인용해 그가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나를 비롯한 20대는 어떨까. 서울의 한 대학교의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2학기 대면(수업 진행)에 투표함... 코로나 이전에 우울증 걸릴 것 같아”라는 익명의 글이 많은 반응을 얻었다. 또 다른 익명의 네티즌은 “쳇바퀴 달리듯 살아와서 이번에는 조금 쉬려고 했는데 코로나 19로 무산돼서 결국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심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이번 학기는 일에 허덕이며 산 것 같아 자괴감이 든다”라고 호소했다.
대학생이라는 시기는 가장 하고 싶은 게 많은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귀고 싶은 사람들, 해보고 싶은 동아리, 배우고 싶은 취미, 가보고 싶은 곳 등등. 대부분의 계획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높은 야외활동량이 요구된다. 그러나 이들은 올해 초 “이런 것들을 다 포기해야 한다니 올해는 대체 어떻게 보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재학생 한 모(23)씨는 “사실 우울감이라고 할지 불안감이라고 해야 될지 명확히 구분은 안되지만, 많은 주변인들이 코로나 불안, 코로나 우울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영향)받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코로나19로 인해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불편함을 느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는 말이 맞다. 열심히 준비했던 교환학기를 포기하고 중도에 돌아왔지만 모두가 힘든 상황에 나는 이 정도면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고생하는 의료진, 해고되는 노동자들 등 실질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 집은 상당히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는 것은 장점이 더 많았다.
바이러스라는 보이지 않는 적을 둔 전시 상황은 복잡하다. 나는 코로나19가 나의 일상에 침투하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다 “우울증은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시작한다”라는 김종우 강동경희대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55)의 인터뷰를 읽으며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는 “집 안에 머물면서 활동량이 줄어들면 일단 무기력해지고, 활동 대신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불안이 증폭된다”고 설명했다.
소위 ‘밖순이’ – 집순이의 반대말로,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라는 신조어 – 인 나는 생활패턴이 완전히 무너지는 중이었다. 적당한 긴장을 유지했던 예전의 리듬을 회복하기가 쉽지 않아서 스스로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수면 패턴의 변화, 식사와 활동량의 변화, 평소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끼던 일에서 멀어지는 것. 모두 위 인터뷰에서 언급됐던 행동들이다. 우울과는 담을 쌓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결국 힘든 상황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봐도 20대에 주목한 ‘코로나 블루’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이들은 평소에 공황장애나 우울증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갈수록 학업과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20대 우울증 환자가 5만3077명에서 11만8393명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는 통계(국민관심질병통계, 건강보험심사평가원)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
집에서도 하루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고, 부지런히 취미를 즐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갑작스레 닥쳐온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실시간 수업이나 약속이 없으면 밤낮이 바뀌고, 가까운 지인들을 굳이 만나려고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밀폐된 공간인 독서실이나 스터디 카페는 물론이고 일반 카페에 나가는 것도 ‘거리두기’의 취지에 반하기 때문에 자주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평소 온라인으로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던 습관의 단점을 발견한 것일까.
출처: 무료이미지 사이트 (freepik)
주변에 고민을 토로하니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인 강 모씨는(23) “(나도) 원래 연락을 잘 안하는 편인데 사람을 안 만나니까 괜히 더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홍익대학교 재학생 김 모(22)씨는 “장단점이 있다. 오히려 자기계발이나 취미에 집중하게 되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 역시 어디까지나 코로나19가 일시적인 상황이라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라는 점에는 다들 동의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재난 상황이 지속되는 경우를 생각해 결국은 새로운 생활방식에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화상 프로그램으로 모임을 진행하는 대학생들. 출처: 화상 프로그램 캡처 이미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은 비대면 소통이 가능하게끔 하는 화상 기술에서 답을 찾았다. 온라인으로 얼굴을 마주하며 밥과 술을 먹고 주기적으로 대화 시간을 갖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상명대학교 재학생 김 모(22)씨는 외국어 학원을 다니는 대신 지인들과 화상 모임을 진행하면서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학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같이 공부하는 건 처음이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전했다.
한국어외국어대학교에 재학 중인 임 모(22)씨는 “합창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대면 연습이나 공연이 어려운 상황이라, 모든 연습을 화상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있다. 공연도 온라인 유튜브 영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밝히며 “모든 화음도 온라인으로 맞추고 있다. 정말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지기금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미디어 재능기부를 진행하고 있는 연합동아리 ‘리듬오브호프’는 일시적으로 활동 노선을 바꾸었다고 밝혔다. 직접 찾아가는 주된 활동이 무산되자 학내에서 진행하는 사회공헌 프로젝트에 공모해 장애인들을 위한 도서사업을 온라인 회의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 이들은 “어려운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단체의 기본 취지는 변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할 것”이라고 전했다.
연세대학교에 재학 중인 지인인 강 모(23)씨는 나에게 화상 독서모임을 제안해왔다. 일주일에 한 번 책을 읽고 화상 어플리케이션인 줌(zoom)을 통해 만나 대화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무기력을 겪은 나에게 온라인 독서모임은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권의 독서라는 결코 작지 않은 목표도 이룰 수 있었고 모임 시간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보니 제약받지 않고 모임을 진행할 수 있었다.
온라인 독서모임. 출처: 화상 프로그램 캡처 이미지
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이전에는 비대면 방식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와 같은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사소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비대면으로 진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가 그러한 전환의 계기가 되기 전에는 주변의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좋든 싫든 언택트 시대에는 많은 기존의 생활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재난 상황이 지나가더라도 일부 ‘코로나 습관’들은 유지될 것이다. 언택트 시대에 맞춰 소비나 경제생활 면에서는 디지털 라이프가 자연스레 확산되고 있지만 타인과의 교류나 학업, 취미 등 자아실현·자기계발과 관련된 일상생활은 의식적인 행동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취미계발이나 학습은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으로 인해 집중력과 능률이라는 측면에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기존에 혼자서 해왔던 행동들이 이제는 비대면으로라도 서로의 존재가 필요한 행동이 되어버린 이유이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온라인 모임에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주기적으로 갖는 대화 시간의 소중함이었다.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고 자아를 실현해야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누구나 ‘코로나 블루’를 겪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