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휴식이 더 불안한 그들, 대한민국 20대

송유채



“엄마, 나 집에 있으니까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아.”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의 확진자가 두세 자릿수를 오고 가던 3월 말, 기자는 엄마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집에서 보내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자의 푸념에 엄마는 “잘 쉬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물었다. 문제는 바로 쉬고 있다는 그 사실이었다. 기자에게 있어서 쉬는 것은 ‘정당화되지 못한 시간’이다.

요즘의 20대에게 시간은 정당화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자기 계발이나 취직, 공부와 무관한 시간은 정당화되지 못한다. 떳떳하지 않게, 옳지 못하게 보낸 시간이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잠을 자는 것조차 다음날 더 생산적인 일을 하기 위한 준비로서 정당화된다. 정당화의 기준과 이유는 저마다 다르지만, 이에 대한 집착은 때로 자기 착취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한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20대가 정당화해야 할 시간은 더욱 많아졌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정당화하는 것은 이전보다 힘들기만 하다. 자격증 시험이 취소되고, 학내외 여러 활동이 무산된 상황 속에서 20대는 목표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위해 생산적인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런 당위적 사고의 굴레에 빠진 20대는, 불안을 느낀다.



코로나로 계획이 무산된 취업준비생


올해 대학교 4학년이 된 신지원(22·가명) 씨는 취업준비생이다. 지난 2월과 3월, 토익 시험이 연달아 두 번 취소되었을 때 지원 씨는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목표로 하는 회사의 인턴 공고가 통상적으로 4월 초에 나오기 때문이다. 공인 어학 성적이 없던 지원 씨는 3월 안으로 반드시 토익 시험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인턴 공고도 미뤄졌어요. 처음엔 다행이다 싶었는데, 그게 좋아할 일이 아니었죠.” 지원 씨가 지원하려던 회사는 올해 인턴 채용을 무기한 연기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자격증 시험도, 인턴 계획도 무산된 지원 씨는 극도로 불안감을 느꼈다. “그냥 되게 당황스러웠어요. 타임라인이 어그러졌다고 해야 하나? 나름대로 인생의 계획을 세웠는데, 그게 무너져 내린 느낌.” 지원 씨는 코로나 이전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자주 느꼈다. 통제하기 어려운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던 작년 여름, 정신과 상담을 통해 약을 처방받기도 했다.

지원 씨의 2020년 새해 목표 중 하나는 정신과 약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계획이 어긋나자, 다시 불안감이 엄습했다. 지원 씨는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알차게 사용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집에서 집중을 잘 못 하는 스타일인데, 카페도 못 나갔으니까… 외출을 거의 안 했던 3, 4월에는 하루 스케줄을 좀 강박적으로 짰어요. 공부 앱도 깔고.”


지원 씨의 주말 일과표를 재구성한 자료. 30분 단위로 촘촘하게 짜인 계획표다.



지원 씨가 설치한 공부 앱 ‘열정품은타이머’의 실행 화면이다. 해당 앱은 공부 시간을 기록하는 용도이며, 스톱워치를 가동하는 동안에는 다른 앱의 사용이 차단된다. 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실시간 공부량과 나의 공부량 순위도 확인할 수 있다.


지원 씨는 이렇게 해서라도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었다. “밖에 나가면 뭐라도 한 것 같은데 집에서는 그게 안 되거든요. 하루 동안 의미 있는 일을 얼마나 했나 기록하면 그나마 마음이 편해졌어요.” 하지만 여전히 지원 씨의 마음 한 편에는 해결되지 못한 불안감이 남아있다. 이 때문인지, 지원 씨는 ‘취업’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기사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그런 기사를 읽기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고, 소화기에 이상이 생긴다.



허비한 시간에 죄책감을 느끼는 대학교 2학년


서울 소재 대학교 2학년인 임정민(22) 씨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무기력감을 자주 느꼈다. “이전이었다면 무기력할 때 카페를 가거나 친구를 만났을 텐데 그게 안 되니까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집 앞을 나서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3월 초의 어느 날에는, 5~6평 남짓한 작은 자취방에 꼼짝없이 누워 온종일 미래를 고민한 적도 있었다.

정민 씨는 기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 학기가 시작되고, 정민 씨는 학내 방송국의 신입 기자로 합격했다. 방송국 활동을 통해 기사 작성법이나 촬영 실무 등을 배우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많은 제약이 생기며 기대했던 배움이나 경험은 얻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정민 씨는 “집에 있는 시간만 늘고, 나한테 꼭 필요한 바깥 활동들은 전부 무산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답답함과 무기력감 외에도 정민 씨를 괴롭히는 감정은 다름 아닌 ‘죄책감’이다. 정민 씨는 자취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며,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잠자기 전에 오늘 시간을 얼마나 허비했는지 계속 계산하고, 그러면서 죄책감 느끼고… 요즘은 공부할 때 핸드폰을 꺼놓고 멀리 던져 놓아요. 아니면 친구를 자취방에 불러서 같이 공부해요. 서로에게 자극이 되니까.” 정민 씨는 아예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에 힘쓰고 있었다.

죄책감의 근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민 씨는 스스로 불안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라고 답했다. 정민 씨는 “불안을 느끼면서도 열심히 안 하는 성격이라 그게 더 불안이 된다”며, 자신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고 거듭 말했다. 하지만 외부에서 바라보는 정민 씨는 마냥 놀기만 하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저한테 쉬고 있는 시간이 왜 버리는 시간이냐,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말라 하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를 잘 못하죠. 정민 씨는 더 열심히 살지 않는 자신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다.



통계가 말해주는 20대의 불안




지난 2018년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와 카카오는 전 국민 행복 연구 프로젝트인 ‘안녕지수 프로젝트’의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안녕지수는 행복을 측정하는 점수로, 주관적 삶의 만족감과 정서 상태, 삶의 의미 등을 측정한다. 약 104만여 명이 2018년 한 해 동안 응답한 설문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20대의 ‘안녕지수’는 30대와 함께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은 점수(52점)를 기록했다. 또한, 20대는 ‘불안지수’에서 49점을 기록하여 30대(48점)와 40대(45점)를 제치고 가장 불안이 높은 연령대로 나타났다.




더불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정리한 2016년부터 2018년까지의 ‘20대 진료 현황’에 따르면, 2016년부터 3년간 우울증과 불안장애, 스트레스로 내원한 20대 환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그 중 불안장애로 내원한 20대 환자 수는 2016년 5만 805명에서 2018년 7만 1,014명으로 39.8% 포인트 증가했다. 이러한 통계 자료는 20대의 불안 수준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으며, 불안을 호소하는 20대가 늘고 있음을 보인다.



20대가 불안을 호소하는 주원인은 취업. 앞으로는?


그렇다면 20대가 불안을 호소하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올해 대학에 갓 입학한 20학번 김다빈(19) 씨는 아직 1학년이지만 취업 걱정이 많다. 다빈 씨는 “고스펙 인재들은 넘치는데 그만큼의 일자리는 없는 상황에 불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제 막 2학년 2학기를 마친 정민 씨도 불안의 주원인으로 취업을 꼽았다. “요즘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진로를 정할 정도로 빠르고… 안 그래도 (취업이) 각박해진 상황에서 코로나의 영향까지 있으니까…” 정민 씨는 코로나의 여파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 우려를 표했다.

2018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실시한 ‘20대 청년 심리·정서 문제 및 대응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대의 불안점수는 △구직활동 여부 △입사지원 탈락 횟수에 유의미한 영향을 받았다. 또한, 심한 불안증상을 보이는 비율은 ‘구직 미취업자’ 집단이 20대 전체 집단 중 가장 높은 비율(11.4%)을 보였으며, 구직 미취업자 집단은 심한 우울·불안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은 취약집단으로 분류됐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취업이 20대의 불안 정서에 미치는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취업 시장의 미래는 밝지 않다.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이 구직자 2천 52명을 대상으로 ‘코로나로 채용 취소 또는 연기를 통보받은 경험’이 있는지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0.7%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다른 구인구직 플랫폼인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서는, 인사담당자 489명 중 74.6%가 ‘예정되었던 채용 계획을 코로나의 영향으로 연기 또는 취소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취업의 문이 좁아지는 가운데, 취업 시장이 언제 복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20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채용 규모는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20대에게는, 특히 구직 미취업자 집단에게는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대학의 비대면 취업 지원과 기업의 온라인 채용 도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지만, 그 효과를 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20대는 여전히 자신을 몰아세우며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