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는 말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그러나 코로나19 등장 이후, 사랑이 변했다. 연애의 시작과 중간, 끝이 빚어내는 모양에 작고 큰 변화가 일었다.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와 시간적 거리를 두고 비교적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20대, 그중에서도 주된 생활공간인 ‘학교’를 잃은 대학생의 경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활공간에 복귀한 다른 연령층보다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은 대학생이 연인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정리하는 과정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기자가 지난 석달 캠퍼스 안팎에서 생활하며 포착한 대학생 연애 사업의 새로운 면면을 정리해봤다.
이전까지 학생들은 수업 또는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 혹은 동성을 발견해 관계를 발전시키곤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오프라인 활동이 차단되면서 등교는 물론 각종 교내 단체의 모임이 중지됐다. 학교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교외에서 인연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해온 대외활동이나 연합 동아리도 인원을 축소하거나 모집 일정을 연기하는 등 문을 좁혔다.
2년째 연애 휴식기를 갖고 있는 서울대 재학생 이모씨(23)는 “새 학기 개강 여신이 돼 수업이나 동아리에서 좋은 인연을 찾고자 마음먹었는데 대면 수업은 불발되고 새 단체에는 들어가지도 못했다”며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길이 막혔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이어 그는 “기존에 속해 있던 단체도 오프라인 모임을 하지 못하고 있어 이미 알던 사이에서 더 깊은 사이로 나아가는 것 또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학 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코로나19를 연애 불황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글이 등장했다. 지난 3월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코로나 때문에 연애 망한 것 같아요”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익명의 글쓴이가 “이번 상반기부터는 정말 마음먹고 찾아보려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잘 안 풀린다”며 작성한 이 글에는 “소개팅 다 취소됐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대면 약속을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인연 형성의 한 방법이었던 소개팅도 제 몫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 게시글 캡처
△ 동시간 온라인 수업(ZOOM) 실행 화면 예시
그러자 온라인으로 인연을 찾으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지 못해도 온라인 수업에서 얼굴을 공개한 학우를 눈여겨보고 마음을 키우는 경우다. 이번 달 9일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온라인(ZOOM)으로 수업을 듣는데 너무 귀여우신 분을 발견했다”며 “다음 수업이 마지막이라니 일찍 발견하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의 익명 게시글이 올라왔다. 서울대 재학생 오모씨(24)도 “온라인 수업에서 취향에 맞는 학우 분을 찾았다”며 “채팅으로 조심스레 연락처를 여쭤보거나 지인을 통해 연락처를 수소문해볼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랜선 소개팅’이라는 신박한 상상도 등장했다. 서울시립대 재학생 권모씨(23)는 “원래 주선 받기로 한 소개팅이 모두 취소돼 허탈한 마음에 ‘화상 미팅으로 소개팅할 수는 없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만남을 구하기 위해 데이팅 앱 사용을 고려해보는 학생들도 생겨나고 있다. 앞서 개강여신을 꿈꿨던 서울대 재학생 이 씨는 오프라인으로 사람 만날 길이 막히자 온라인으로 눈길을 돌렸다. 이 씨는 “(데이팅 앱을) 한 번도 사용해본 적 없었는데 몇 주 전 새로 설치해봤다”며 “코로나로 원래 친했던 사람들과도 잘 못 만나서 그런지 외로움을 느끼는 정도가 크게 늘어 새로운 인연 형성의 욕구가 더 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미 연애 중인 학생들의 경우 데이트하는 양상이 사뭇 바뀌었다. 데이트 코스의 정석으로 여겨졌던 영화관, 미술관, 극장 등 문화 시설이 폐쇄되고 다수가 밀집하는 유명 카페와 레스토랑 이용을 꺼리게 되면서부터다. 이에 실내 데이트가 늘었다. 2년째 연애 중인 고려대 재학생 김모씨(21)는 “최근엔 자취방에서 둘이 소소하게 요리를 해먹거나 게임을 하는 식의 집 데이트를 주로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외출해도 생활 구역을 벗어나지 않고 연인과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모양새다. 김 씨는 “웬만하면 먼 곳으로 잘 안 나가고, 야외에서 데이트할 경우 근처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에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택트(비대면) 데이트’도 등장했다. 공인회계사시험을 준비 중인 연세대 재학생 박모씨(23)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연인과 매일 도서관에서 만나 공부하며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감염병 환자가 늘어난 후엔 직접 만나는 횟수를 대폭 줄였다. 박 씨는 “도서관도 문을 닫았을 뿐더러 각자 집에서 외출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직접 만나 데이트하긴 좀 그렇다”며 “대신 줌으로 매일 아침 만나 스터디하고, 공부하지 않을 땐 각자 일상을 카메라로 비춰 공유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나마 만남을 지속하는 연인도 있지만 바쁜 일상에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쳐 얼굴을 거의 보지 못하는 연인도 있다. 특히 장거리 연애 중인 연인은 잠깐씩 얼굴을 비출 수도 없어 함께 시간 보내기가 쉽지 않다. 학교 수업이 모두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돼 본가인 울산으로 내려간 서울대 재학생 이모씨(24)는 두 달째 서울에 거주 중인 연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연인 중 한쪽이 군 복무 중이라면 상황은 더욱 어렵다. 국방부는 코로나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지난 2월 말부터 장병의 외출 및 외박, 면회를 전면 제한했다. 이 때문에 공군 남자친구를 둔 서울대 재학생 김모씨(23)는 넉 달간 애인을 단 한 번 만났다. 김 씨는 “면회도 통제되고, 원래대로라면 여러 번 받았을 휴가는 4개월 동안 한 번밖에 못 받았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겨우 휴가를 나와도 다중이용시설 방문은 금지돼 있어 짧은 데이트 내내 공원이나 소규모 식당 등에만 머물렀다”고 말했다.
한편 이러한 코로나 시국이 연인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는 사람도 있다. 고려대 재학생 류 모씨(26)는 “연인은 ‘코로나 끝나면 봐’ 라는 말로 만남을 미룰 수 있는 선택적인 사이가 아니”라며 “코로나로 인해 동아리나 학회 모임, 친구들과의 약속이 줄어 애인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서울대 재학생 류 모씨(23)는 “이번 학기 바쁜 일정 탓에 연인과의 사이가 틀어질까 걱정이 많았는데, 코로나 덕분에 사회 전반적으로 외출을 줄이는 분위기가 조성돼 연인과 평소보다 덜 보고도 큰 문제없이 상반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연인 관계에 한해 코로나19에 감사를 표했다.
위에서 언급했듯 코로나19 확산 이후 연인 간 만남의 횟수가 대체로 줄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연인 간 합의를 거쳐 공백기를 무사히 견딘 연인도 있었으나, 관계가 소원해져 연애에 마침표를 찍게 된 연인도 많았다.
올해 들어 코로나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꼴로 연인과 시간을 보내던 서울대 재학생 김모씨(23)는 2주 전 긴 연애를 끝냈다. 그는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이 있듯,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코로나 블루’를 헤어짐의 원인으로 꼽기도 했다. ‘코로나 블루’는 코로나19와 우울감을 뜻하는 영어단어 blue가 합쳐진 신조어로,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에서 갑자기 많은 변화를 겪은 이들이 앓는 우울감을 뜻한다. 김 씨는 “코로나 블루 때문인지 둘 다 심리적으로 불안정해 많이 예민해져 있었다”며 이로 인해 연인 간 다투는 횟수도 이전보다 심하게 증가했다고 밝혔다.
한편 서울대 재학생 강모씨(23)는 이미 멀어진 마음을 감추기 위한 핑계로 코로나19를 활용했다. 강 씨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부터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며 “먼저 그만 만나자고 할 자신이 없어서 전 애인이 만나자고 할 때마다 코로나 핑계를 대며 회피했다”고 말했다. 강 씨는 코로나19를 내세운 채로 두 달여를 버티다 결국 지난달 말 연인과의 사이를 정리했다.
앞선 이야기들은 나날이 새로운 경험으로 도배되고 있는 코로나19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대학생들이 어떤 방식으로 인연을 발견하고, 또 지탱해나가는지를 그린 초상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다. 여러 종류의 관계가 존재하지만, 사랑을 전제로 한 연인 관계는 그중에서도 단연 가장 깊고도 심오한 종류의 관계다. 위에서 2주 전 연인과 헤어졌다는 서울대 재학생 김 씨는 기자와 대화하던 도중 “코로나가 내 일상을 많은 면에서 바꿔 놓을 줄 알고 있었지만 사랑하던 여자친구와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나이가 어린 만큼 가장 푸르기도 한 대학생들의 청춘, 그 속의 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애의 단면들이 코로나19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