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MBTI 성격유형검사에 “과몰입”하는 이유

김진명



(그림 1-1. MBTI의 분류 방법)


“MBTI가 어떻게 되세요?”


2000년대 초반에는 공감대 형성의 차원에서 “혈액형”을 물었다면, 요즘 새로운 이를 대면할 때 농담처럼 “MBTI 유형”을 묻는 패턴이 익숙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혈액형은 과학적으로 적혈구 표면 당단백질의 패턴차이로 결정되는 허무맹랑한 유사과학으로 치부되는 반면, MBTI는 검사의 간편성 대비 상당한 신빙성을 자랑하며 교육기관, 직장, 군대 등 조직에서 광범위하게 시행 및 사용되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MBTI 연애유형”, “MBTI 궁합”, “MBTI별 잘 어울리는 직업” 등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밈(MEME)들이 인터넷 상을 지배하며 MBTI는 명실상부 “한 인간의 성격(성향)을 대변하는 가장 신뢰도 높은 척도”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그림 1-2. MBTI의 16가지 유형)


MBTI란 무엇일까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카를 융(Carl Jung)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고안한 자기 보고식 성격 유형 검사 도구인 MBTI는 국내에서는 2010년 초반부터 그 검사 시행이 보편화되어왔다. 8090년대생들이 초등학교에서 필수관문처럼 거치던 IQ테스트를 지나 이제는 MBTI 성격유형검사가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MBTI는 정신적 에너지의 방향성을 나타내는 외향-내향(E-I) 지표, 정보 수집을 포함한 인식의 기능을 나타내는 감각-직관(S-N) 지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 내리는 사고-감정(T-F) 지표, 인식 기능과 판단 기능이 실생활에서 적용되어 나타난 생활 양식을 보여 주는 판단-인식(J-P) 지표 등 4가지 분류 기준에 따른 결과에 의해 수검자를 16가지 심리 유형 중에 하나로 분류하며, 이 4가지 선호 지표가 조합된 양식을 통해 16가지 성격 유형을 설명하여, 성격적 특성과 행동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는다.



20대는 왜 MBTI에 열광하는가?


많은 기성세대들에게 MBTI 성격유형은 혈액형, 별자리와 다를 바 없는 유사과학으로 여겨진다. 여기에 심리학을 기반으로 한 통계수치라는 과학적 신빙성이 더해졌다고 해도 장년층의 반응은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 “요즘 애들은 하여튼 별나. 60억 지구 인구를 16개 유형으로 나눈다는 게 다 무슨 의미인지 원.” 정통 심리학자들의 첨예한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부모님 세대의 일갈은 “MBTI”에 대해 맹신에 가까운 열광을 보내는 20대의 시선과 첨예하게 대립하곤 한다. 또한 성격의 발현이란 외부 요인에 따라 시시각각 기복을 띄는 가변성을 수반하기 때문에 일리가 있다. 이러한 회의스러운 점들에도 불구하고, “알 거 다 아는” 20대들은 대관절 어떤 이유로 MBTI 성격유형검사에 열광하는 것인가? 답은 2020년 현재, 전 세계 젊은이들 모두의 공통 관심사인 “자아탐색”에 있다.

30K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한 트위터 MBTI 계정의 운영자이자 “슈퍼 트위터리안” A씨(25)는 트위터 상에 존재하는 “MBTI판”의 네임드 유저이다. “지피지기라는 말처럼 MBTI는 나를 알고 타인을 알게 되어 사회관계 형성에 지대한 도움을 주는 백과사전 같은 존재”라며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낸 그는 “MBTI에 미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진짜 나’를 알아가는 일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사실 우리 세대는 학업에 치이고 취업에 치이는 통에 진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즐기는지 탐색하고 향유할 여유가 많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다들 사회통념이 정해놓은 ‘잘난 사람’, ‘좋은 사람’ 틀에 맞춰 살아가기 급급하니까, 조금만 어긋나도 내가 잘못한 것 같고 나만 유별난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런 사람이야’하고 스스로와 솔직하게 소통한다든지, 곰곰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많이 없는데 MBTI가 돌파구이자 분출구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라며 자신의 의견을 털어놓은 A씨 “MBTI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도 한결 넓은 시야를 제시해줬다”며 일례로 친한 친구와의 다툼을 들었다. “저는 ENTP고 친구는 ISFJ 유형이에요. 십여 년째 친구였는데 잘 맞는 듯 다른 점이 너무 많아서 늘상 티격태격하는 게 일상이었어요. 가장 큰 차이는 T-F(사고형-감정형)인데, 예를 들자면 저는 친구가 고민을 이야기하면 늘 해결책 제시를 해주고자 최선을 다하는데, 막상 친구는 제 방식이 잘 맞지 않았었던 거죠. 참다 참다 한 번은 “그냥 아무 말 말고 위로를 해달라”며 울었었는데, 반대로 저는 그 때 친구의 말이 정말 이해가 안 갔어요. 제 입장에서는, 말뿐인 위로가 무슨 의미지? 싶었었는데 알고 보니 이게 사고형과 감정형의 가장 큰 차이점이래요. 문제 해결을 위해 논리적인 설계를 필요로 하느냐, 아니면 정신적 지지를 필요로 하느냐의 차이인데, 제가 친구를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됐죠(웃음). 지금은 전에 비해 현저히 다툼이 줄었어요. 저는 제 친구가 슬픈 일이 있다고 할 때 “괜찮아?”를 먼저 묻는 요령이 생겼고, 최대한 정서적인 위로를 해주려고 해요. 비단 친구관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며 알게 된 새로운 인연들에게도 더 현명한 접근방식을 깨우친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성향의 보유자에 대한 근본적인 인지와 이해를 깔고 가니까 사람 사귀는 일이 한결 편해졌달까요. 그런 의미에서 MBTI는 정말 책사 제갈량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16가지 유형으로 수많은 인간 개체들을 정의하고 분류할 수 없다는 의견에는 동의합니다. 인간은 인간이기에 모두 다르니까, 하다못해 일란성 쌍둥이도 성격은 천차만별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인간이기에 비슷한 점들이 있고, 그 비슷한 점들이 모여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때론 우울감의 소거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왜 가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는 말에 뻘하게(난데없이, 뜬금없이) 위로받기도 하니까요. 세상 누구도 나와 똑같을 수는 없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이렇게나 많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자괴를 느끼거나 쉽게 극복이 안 되는 지점들을 하나의 유형화 개념 안에 가둘 수 있는 게 살아가는 데에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에 재학중인 김연수(20)씨는 MBTI에 “과몰입”하는 이유로 “자존감 지킴이”를 언급했다. “MBTI는 제 자존감 지킴이에요. 저는 INFP(잔다르크형) 유형인데, 이 유형의 사람들을 인터넷 상에서 흔히 “게으른 완벽주의자”, 또는 “소심한 관종(관심종자)” 으로 표현하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 사람 사귀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처음 만날 때 낯을 정말정말 많이 가려서 늘 고민이었거든요. 또 분명 사람 만나길 좋아하고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맺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나면 기가 쭉 빨려버려서 어떤 날은 외출하는 순간부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곤 해요. 제 개인 시간과 공간이 너무 중요해서 집순이는 집순인데, 또 누가 노는 자리에 안 불러주면 괜히 서운하고 상처받는 거 있죠. 저는 이런 제가 너무 싫었는데, MBTI를 알고 나서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고, 이러한 성격의 발현들이 에너지 방향(I 내향형)에 근간을 둔다는 심리학적, 과학적인 통계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전에는 제 성격을 고치고 싶어서 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한 가면을 장착하고 소셜라이징에 임했었는데, 이제는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개인적 소견으로는 자존감 향상 차원에서는 MBTI만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웃음)”

이처럼 MBTI는 단순히 심리 검사를 넘어 하나의 문화, 또는 자아나 타인에 대한 “식별 코드”로 20대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절륜히 수행하고 있다. “인간의 성격을 분류하고, 보편적인 공통점 또는 차이점을 유형화는 일”자체가 “YOLO”, “소확행” 등 끊임없이 심리적 자기계발과 자아성찰에 발을 내딛는 21세기 20대의 고유 감성에 부합한 것이다. 특정한 자신의 성향에 공감하는 타인의 존재만으로 “천군만마”의 위로를 주는 “감정형” 신뢰도(reliability)와, 통계 기반 수치와 심리학 이론의 과학적 근거가 선사하는 “사고형” 타당도(Validity)는 MBTI성격유형 분류의 특장점이라 할 수 있다.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던 “소통의 단절”현상은 MBTI의 유행 국면을 맞아 새로이 변모할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