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계가 멈췄다. 3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한 ‘코로나19 사태가 예술계 미치는 영향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4월 사이 코로나19로 인해 취소 및 연기된 현장예술행사는 전국 2,511여 건이며, 그 피해액은 523억 원에 달한다. 앞서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을 ‘연극의 해’로 지정하고 연극 박람회, 공연, 학술대회 등에 21억 원 상당의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사업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을 올리기 어려워지면서, ‘연극의 해’ 사업은 사실상 의미를 잃게 되었다.
피해를 본 것은 직업 연극인뿐만이 아니다. 연극을 전공하는 학생도 코로나 19의 여파를 피해갈 수 없었다. 순천향대학교 공연영상학과에 재학 중인 24살 손혜리씨는 올해 4학년이다. 원래대로라면 졸업 작품을 무대에 올려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작품과 관련된 작업은 현재 완전히 중단된 상태다. 졸업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졸업 작품을 제작하고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례적인 상황에 지금은 2학기에 공연을 올리거나 논문으로 공연을 대체하게 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혜리 씨는 1학기에 8시간의 실습수업을 수강했다. ‘고급 연기’ 수업 4시간과 ‘공연제작실습’ 수업 4시간이다. 두 수업 모두 원래는 졸업 작품 제작을 위해 수강하는 수업이다. “처음에는 줌을 활용해서 수업했어요. 줌으로는 움직임을 보지는 못하니까, 대본 리딩을 했고요. 교수님께서는 캐릭터 창조나 화술에 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비대면수업의 장점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니다. 혜리 씨는 모여서 제대로 합을 맞추지는 못하지만 대면 수업에 비해 연습을 할 때 시공간적 제약을 덜 받는다는 점에서는 편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생활 속 거리 두기’로 방역 방침이 바뀌면서 5월 말부터는 대면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지침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수업은 마스크를 쓴 상태로 진행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연기를 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헤리씨는 솔직히 힘들다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마스크를 쓰면 연기를 볼 수는 없긴 한데... 최대한은 쓰려고 노력을 했어요. 동선을 맞추거나, 상대와 간단하게 합을 맞추는 정도는 마스크를 쓴 상태로 했고, 다만 연출이 판단했을 때 몰입해서 연습을 해야 할 때에는 마스크를 벗고 (연습을)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이런 연습마저도 하고 있지 않다. 학교 측에서 연습을 자제하라는 권고가 내려오기도 했지만, 다른 문제도 있었다. “관객을 받을 수가 없으니까, 온라인 상영을 하려고 했거든요. 그러려면 카메라나 장비, 촬영 스태프도 필요한데 그런 부분은 저희가 기술도 없고 전문가도 없어서…” 결국 졸업 작품은 물론, 다른 학년의 공연 준비도 현재는 모두 중단됐다. 혜리씨는 점점 연극이나 뮤지컬이 다시 상영되고 있는 만큼, 방학 중에 학생 자율 워크숍을 진행한다면 워크숍 공연 정도는 올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연극이나 연기를 전공하는 많은 학생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는 3월 초에 예정되어 있었던 공연 <타임레터>의 상영을 계속해서 연기하다가 결국은 완전히 취소했다. 중앙대학교 연극학과의 경우 2월 말에 예정되어 있던 공연은 방역 지침을 지키며 계획대로 완료했지만, 이후의 공연은 외부인의 출입 없이, 학생들끼리만 소소하게 모여 비공개로 결과물을 발표했다.
공연을 올리기 위해 임기응변으로 창작극을 만든 경우도 있었다.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있는 24살 고주영 씨는 5월 17일, 대학로에서 졸업 작품을 공연할 수 있었다. 다만 평소처럼 소극장을 빌리는 대신, 서울거리예술축제에 참여하여 야외에서 극을 올렸다. “저희 팀은 <응급환자>라는 작품을 올렸는데요, 연습할 때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생해서, 마스크를 쓸 수 있는 직업은 어떤 직업이 있을지를 먼저 고민했어요. 그래서 모든 인물이 의사로 등장하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공연 장소가 야외였던 것도 공연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거리극이었기 때문에 실내 연습실을 사용하지 않고, 야외에서도 연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 준비를 할 때는 평일에는 8시간, 주말에는 12시간 가까이도 연습을 하거든요. 이번에는 연습 시간 자체를 최대한 줄이기는 했는데, 그래도 코로나 때문에 연습실 대여 시간에 제한이 생겨서 실내 연습을 하는 경우에는 제약이 있었어요. 다행히 저희는 야외에서 더 안전하게 연습을 할 수 있었는데, 소극장에서 공연하려고 했던 팀은 연극을 올리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주영 씨는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학기의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줌으로 공연을 하는 팀도 있었다. “공연의 형태라고 하기는 어렵고, 성적은 받아야 하니까 (줌으로라도 했던 것 같아요)… 비디오를 껐다가 켰다가 할 수 있으니까 (배우가) 퇴장하면 카메라를 끄고, 등장하면 켜는 식으로 하고, 무대 디자인이나 조명을 담당했던 학생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조명을 보여주는 식으로 했어요.” 그 외 대부분의 팀은 연습실에서 학생끼리 모여서 연극을 하는 것으로 학기를 마무리했다.
“안전이 중요하니까, 비대면으로 수업을 하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교수님들께서 비대면 수업을 활용을 못 하시고, 조금 수업이 형식적으로 진행이 된 것 같기는 해요. 피드백이 잘 안 되니까…” 주영 씨는 비대면 수업에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하면서도 교수진이 비대면 수업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전면적인 비대면 수업이 이루어진 것은 처음인 만큼, 전공을 가리지 않고 많은 학교에서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실습수업이 주가 되는 예술 수업은 그 정도가 더 심했다. 기자는 원래부터 온라인 수업을 진행해온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교’에서는 어떤 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는지 인터뷰를 요청했다. 디지털 서울문화예술대학교는 사이버 대학 중에서는 유일하게 문화 예술 분야에 특화된 대학이다.
“이론 수업은 원래 온라인 수업 기반이라서, 항상 해왔던 것이라 다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위취득이나 학점 취득, 자격증 취득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서울문화예술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과사무실에서는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실습수업의 경우에는 서울문화예술 대학교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온라인 강의로 진행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도 실습수업은 전면 대면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개강이 다섯 차례에 걸쳐 연기되어 6월 1일에서야 오프라인 개강을 했고, 따라서 8월이 되어서야 종강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대면 실습수업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진행되는 중이다. 다만 한 공간에 최대한 적은 수의 학생이 들어가도록 반을 여러 개로 나누었고, 방역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정기 공연도 정상적으로 올릴 계획이지만, 관객을 모으기 어려운 현실이므로 무관중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진행된다. 다른 학교 연극 전공 수업에서 시설 및 인력 부족으로 영상화에 어려움을 겪는 것에 비하면 서울문화예술 대학교는 여건이 좋은 편이다. 연극영화과에서는 “기존부터 해오던 작업이라 수월하게 진행이 될 것 같습니다. 촬영 및 중계 장비도 있고, 촬영팀, 편집팀, 기획팀이 모두 교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업무 협조 요청만 한다면 방송을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정기 공연 역시 중계팀에서 리허설을 하면서 시간대별로 어떤 앵글을 사용할 것인지, 이런 부분을 고려해서 (카메라를) 설치할 계획입니다.”라며 영상화에 대해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렇듯 대학 내에서도 코로나 19라는 이례적인 상황에 속에서 수업하고, 공연을 올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각본 및 공연 환경을 새로 만들거나, 영상 매체를 활용하는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는 공연은 물론, 수업도 제대로 제공하기가 어렵다. 충분한 장비가 없거나, 장비가 있더라도 교수자가 사용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공연 예술계는 조금씩 다시 공연을 선보이며 관객을 모으고 있다. 학교 역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대면 강의가 일상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가 제공한 비대면이라는 환경을 그저 신기하고 독특한 경험으로 취급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원격 수업과 온라인 공연이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른 시기. 지금은 어쩌면 예술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탐구할 최고의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