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걸려도 책은 읽을 수 있겠지?”…닥쳐오는 삶이 감염보다 무서운 20대

강세린



“어제 설사했는데 두통도 심하고 온몸이 다 아파요. 참고 공부하는 법 있을까요?” 최근 취업 관련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고민상담 글이다. JTBC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청춘시대2>에서 한 인물은 큰 병원에 가 보라는 친구의 말에 이렇게 답한다. “그럴 새가 어디 있어. 나 바빠. 취준생이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아파도 참고 공부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온 20대의 대부분은 국가적 재난 속에서도 달리던 것을 멈추고 휴식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이처럼 감염의 위험 속에서 ‘아파도 공부할 것’을 각오하고 달리는 이들에게 코로나19는 시험응시에 대한 장애물로서 여러 정신적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존재일 뿐이다. 나아가 줄줄이 취소·연기된 기업들의 상반기 채용 일정들로 인해 하반기까지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청춘들에게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잠시 멈춤’이 더욱 먼 이야기로 느껴진다. 26.34%로 전 연령대에서 확진 비율이 가장 높은 20대1)는 지금 단순히 청춘을 즐기고만 있을까. ‘코로나 시대’에도 ‘살아남기’ 위해 허덕이기 바쁜 20대를 취재했다.



· 코로나19는 시험에 대한 장애물일 뿐…아픈 건 상관없어


국가공무원 5급 공채 시험을 준비 중인 최승표(24)씨의 일상은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최씨는 매일 7시에 기상해 8시부터 11시까지 다른 수험생들과 일명 ‘기상 스터디’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 12시부터 5시까지 학원 수업을 수강한다. 저녁을 급히 먹은 후 새벽1시까지 독서실에서 자습시간을 가지면 하루 총 14시간의 공부 시간을 달성한다. 스터디 조원들이나 학원 수강생들과의 접촉 과정에서 감염이 우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코로나19에) 감염되어도 책은 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최 씨처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일명 ‘공시생’들은 현재 수십 만 명 규모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물론 공시생의 규모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얻기는 어렵다. 공시생은 기본적으로 대학교·대학원 재학이나 학원 수강 등의 이유로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되지만, 공무원시험 원서를 접수하는 순간 '실업자'로 분류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취업자'로 분류되는 등 상황에 따라 다른 분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공무원시험의 종류도 다양하여 정확한 규모 추정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최근 두 달간 치러진 공무원 시험에 접수 및 응시한 숫자만 해도 30만 명이 넘는다. 행정안전부와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13일에 치러진 2020년 지방공무원 및 지방교육청 공무원(교육행정 등 교육감 소속 지방공무원) 8·9급 공개경쟁임용시험에 접수한 응시생은 총 24만531명, 지방교육청 공무원 시험은 5만5338명이 응시했다. 앞서 5월16일 진행된 국가공무원 5급 공채 및 외교관 후보자 1차 시험 때는 1만2000여 명이, 같은 달 30일 치러진 순경 공채시험에는 5만여 명이 접수했다.

공시생 외에도 쉬지 않고 미래를 준비하는 수많은 20대 청년들에게 코로나19 감염의 의미는 시험과 연관될 뿐이다. 코로나19는 본인이 수년 동안 준비해온 시험의 고사장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거나, 시험에의 집중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공인회계사시험(CPA)을 준비하는 서울대학교 4학년 양지연(23) 씨는 코로나19 유행 이후 시험을 준비하면서 “마스크를 쓰면 체력이 두 배로 빨리 소진되어 집중이 어려웠지만,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열심히 준비한 시험에 응시하지 못할까봐 착용했다”라고 말했다.



· 열심히 노력했는데, 코로나19로 ‘도루묵’…극심한 스트레스


이처럼 감염 위험에도 시험일에 맞춰 학습일정과 컨디션을 조절해 왔던 수험생들에게 시험 일정의 취소와 연기로 인한 정신적 충격과 무력감은 크다. 서울대학교 4학년 송은진(23)씨의 경우 토익 시험이 코로나19로 인해 2월 29일, 3월 15일, 3월 29일로 세 차례나 연기되어 결국 응시를 포기했다. 송씨는 “시험 연기에 대해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아무래도 긴장하면서 하루하루 준비하다가 그 목표가 미뤄지면 맥이 빠지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하며, “처음으로 시험 연기가 통보된 것이 시험 3일 전이었는데, 일방적 통보가 계속되다 보니 이후에는 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시험이 돌연 취소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너무 커 집중할 수 없었고, 결국 준비해왔던 시험 응시를 포기했다”고 답했다.

이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것은 정상영업을 하는 학원들. 내가 집에서 쉬는 사이 다른 사람들은 대면 수업과 독서실 자습을 할 생각을 하면 집에만 있을 수 없다. 확정되지 않은 시험일정에 불안한 마음은 물론 시험이 연기된 기간만큼 학원비·교재비 지출도 늘어나고 있어 부담이 적지 않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연우민(24)씨는 “학원이 문을 여는데 저희가 어떻게 쉬어요. 나라에서 (코인)노래방을 금지시킬 게 아니라 학원을 강제로 닫아줬으면 좋겠어요, 아무도 못 가게. 누군가 (학원에) 나가면 나머지도 불안해서 안 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게다가 시험이 연기되면서 그만큼 몇 달 더 (학원을) 등록해야 하기까지 해서 진짜 갑갑해요.”



· 연달아 채용취소·연기…달려갈 방향조차 잃었다


수많은 기업들의 상반기 채용 일정 취소·연기로 인해 구직자들의 좌절과 스트레스 또한 매우 심각하다. 3월 잡코리아가 인사담당자 489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관련 채용계획 변화’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코로나19 확산 이후 기업 74.6%가 예정되어 있던 채용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들은 뒤늦게 온라인을 통해 비대면 면접을 진행하는 ‘언택트’ 방식을 택하기도 했지만, 경제 사정으로 신입 채용이 어려운 기업들이 훨씬 많아 이미 합격한 구직자의 채용을 취소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 4월 사람인이 구직자 2052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로 채용 취소 또는 연기를 통보 받은 경험’에 대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0.7%가 ‘있다’고 답했으며 이 중 18.9%가 ‘채용 취소’를 경험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김용희(27)씨는 지원하려던 회사들의 채용 일정이 연기된 이후 아직 확정되지 않은 회사들의 일정들조차 언제 갑자기 연기·취소될지 몰라 컴퓨터만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Zoom)으로 면접을 본 적이 있는데, 면접관 분들이 카메라를 켜지 않으셔서 반응을 볼 수도 없고, 질문이 멈춘 순간에 그 정적이 천 년처럼 느껴졌어요. 그때의 불안한 마음이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은 정도였어요.”



· 코로나19보다 먹고 사는 것이 무섭다…“나도 감염되기 싫지만…”


특히 금전적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코로나19보다 앞으로의 막막한 생계가 훨씬 두렵다. 그러나 어려워진 경제 사정과 공급 초과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20대들은 감염 위험이 높아 근무가 꺼려지는 사업체로 내몰리기 일쑤이다.


남혜인(25)씨가 6월 셋째 주 경기도 안성 쿠팡 물류센터로부터 받은 문자. 지난 5월부터 경기도 부천 쿠팡 물류센터에서 100명 이상의 집단 감염이 발생한 이후 전반적으로 쿠팡 근무 지원자가 대폭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인 남혜인(25)씨는 근처 지점의 집단 감염 사태 이후 일손이 부족해진 안성 쿠팡 물류센터로부터 ‘긴급 구인’ 문자를 받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 씨는 “쿠팡에서의 아르바이트는 원래 초보자들도 하기 쉽고, 돈이 급할 때 단기로 일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경쟁률이 높은 알바였다”고 말했다.

남 씨는 결국 쿠팡 작업장에 출근했다. “당장 집 밖에 나가기도 무서운 상황에 감염자가 무더기로 나온 작업장으로 나가자니 많이 망설여졌는데, 너무 절박하더라고요. 자취방 월세는 계속 나가고, 스물다섯 먹도록 취업도 못한 상태인데, 대전에서 장사하느라 힘들어하시는 부모님한테 손 벌릴 수도 없고. 원래 조교로 있던 입시학원은 온라인으로 전환돼서 나갈 일이 없는데, 일하던 식당 사장님도 인건비가 안 나온다고 출근하지 말아 달라고 해서.” 남 씨는 “집에서 쉬면서 돈 없다고, 힘들다고 해도 욕먹었을 거예요. 저도 아프기 싫고 무서운데, 이 시국에 (쿠팡을) 간다고 뭐라 하면 서러울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1) 2020년 6월 25일 0시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