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정보학과 2017-12578 이재인
선거 개혁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추진을 앞두고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기소권에 대한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지난 15일 여야 4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도입을 묶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데 합의했다. 국회에서 선거제 개혁은 처음 떠오른 주제가 아니다. 민주당은 2015년부터 일관되게 선거법 개정을 주장해왔고,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선거 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현재 자한당을 제외한 4당이 선거법 개정 합의안 마련에는 성공했으나, 정작 공수처 문제로 발이 묶였다. 공직선거법 제24조 2항에 따라 내년 실시되는 21대 총선 지역구 확정이 이달 15일까지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역구 확정과 더 높은 단계인 선거법 개정을 시간 안에 모두 마무리 짓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이번 패스트트랙 추진이 실패할 경우 선거제 개혁이 기한 없이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한편 4당이 합의 기준을 마련하며 개정안의 내용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 국회의원 증원 찬반과 수준 등에 대해 합의점을 찾다보니 생긴 결과다. 일반 유권자는 물론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도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따라서 유권자의 개정안 이해를 돕고자 기사를 작성하였다.
현행 선거제도의 특징은 다수대표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다. 소선거구제 방식으로 253명의 지역구 의원을 선출하고, 지역구 선거의 득표율과 관계없이 비례대표 전국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다. 현 제도의 문제점은 정당의 ‘지역 쏠림’현상, 낮은 비례성으로 인한 정당의 과대·과소대표, 높은 사표율이다. 특히 낮은 비례성은 양당제를 고착화하고 우리 정치를 대결 정치로 만드는 원인으로 이해되어 왔다.
(차트1) 낮은 비례성을 시각화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실제 득표율과 의석률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득표율에 비해 각각 16석, 41석을 더 확보해 과대대표,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각각 47석, 21석을 얻지 못해 과소대표 되었다.
(차트2) 영, 호남은 이러한 불균형이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 실제 의석수 분포를 보면 특정 정당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영남에서 새누리당은 45.49%을 득표했지만 65개 의석 중 48개를 확보하며 73.85% 의석 점유율을 보였다. 반면 국민의당은 1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호남의 경우 46.08%를 득표한 국민의 당은 28석 중 23석을 확보하며 82%의 점유율을 보였다. 정의당은 호남 지역에서 새누리당보다 높은 득표에 성공했지만 실제 의석수(0석)는 오히려 새누리당(2석)보다 적었다. 충청과 수도권의 경우 등은 영, 호남 지역에 비해서는 불균형이 덜하지만 역시 거대당이 과대대표되는 양상을 보였다.
(차트3) 17대부터 20대 총선까지의 사표율이 대략 50%에 가까웠다. 20대 총선의 투표율은 58%였고 그 중 반이 사표라고 한다면, 사실상 유권자의 4분의 3은 정치적 대표를 갖지 못한 셈이다. '극히 낮은 대표성'을 현 제도의 문제점으로 꼽는 이유다.
여야 4당이 합의한 제도는 정확히 말하자면 ‘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다. 핵심은 비례대표 의석을 75석으로 확대, 지역구와 비례대표 득표율을 연동하여 의석 배분, 비례 의석 권역별 배분이다.
여기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란 독일식 선거제도로 정당 득표율로 정당의 전체 의석수(지역구+비례대표)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병립형과 달리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가 연동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권역별 연동형’은 비례대표 의석을 권역별로 배분해 지역의 대표성까지 확보하기 위한 제도다. (▷서울 ▷경기·인천 ▷충청·강원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호남·제주) 각 정당은 비례대표 정당명부도 권역별로 작성하게 된다.
다만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택할 경우 정당 득표율보다 의석수가 적으면 부족한 만큼 의석을 추가 배분하기 때문에, 의석수 증원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국회의원 정수 증원은 하지 않기로 한 상황이기에 연동률을 50% 적용해 추가 의석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입장이다(준연동형).
가상의 상황을 예시로 들어 과정을 살펴보자. 비례대표 의석수는
① 전국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한 의석수에서 지역구에서 기확보한 의석수를 차감한 후, ② 남은 의석수의 50%를 보정해준다(선배분 의석). ③ 배분 이후 남은 의석은 다시 기존 제도처럼 정당 득표율로 배분한다(추가배분 의석). 각 정당은 내부에서 권역별 득표율에 따라 확보한 의석을 나눈다
아래의 표는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표로 나타낸 것이다. 하단의 현행 제도 시뮬레이션과 비교했을 때 비례성의 증가를 확인할 수 있다. A당의 경우 정당 득표율이 35%이므로 배분받아야 할 의석수는 300석*(35/100), 즉 105석이다. 105석에서 지역구 의석으로 확보한 70석을 빼면 35석이 남고, 이 35석의 50%를 보장해주므로 A당은 선배분에서 17석을 확보한다. 동일한 방식으로 모든 당에 의석을 배정하면 39석이 남는다. A당은 득표율에 따라 14석을 추가로 얻어 총 101석을 확보하게 된다. 완전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만큼은 아니지만 현행 제도의 결과와 비교했을 때 비례성이 상당히 보정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의 표는 20대 총선 방식에 개정안을 적용한 시뮬레이션 결과다.
시각화를 통해 개정안을 적용했을 때 현행 제도보다 비례성이 증가함을 확인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곧 이번 제도 개혁이 실질적으로 민심을 더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더 '좋은' 제도라는 말은 아니다. 의원정수를 늘리지 않는 선에서 법을 바꾸려다보니 개정 의도가 모호해졌다. 각 제도가 포함하는 고유성과 가치는 무시하고 여러 제도를 단순히 합쳐 놓았다는 비판이다. 정치적 윤리나 규범보다 정당의 이익이 우선인 정치 행태에서 비례대표제가 제대로 기능할지 모르겠다는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거법 개정을 차일피일 미룰 수도 없다. 이번 시도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결과를 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역구를 확정해야하는 15일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는 여전히 갈등 중이다. 이번 패스트트랙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선거 개혁의 불씨가 꺼지는 것은 물론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 가중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국회는 조속히 패스트트랙 추진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하며, 이번 시도가 실패하더라도 선거 개혁의 끈을 완전히 놓지는 않아야 한다. 명확한 가치 설정과 충분한 논의를 통해,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대표하는 정당 간의 유연하고도 경쟁적인 정치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류정민 기자, “불법국회 D-5…의원 이기심이 만든 '깜깜이 총선'”, 아시아 경제.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9041011190391010
유성운 기자, “국회의원 증원? 100명 중 75명 반대, 연동형 비례는 찬성 우세”,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3256183
김수민 팩트체커, “'절묘한 타협' 선거제 합의안, 복잡하지만 새로운 길4당 선거제 개편 합의안 의미와 패스트트랙 전망”, 뉴스톱.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3
"[이슈토론]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매일경제.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9&no=169317
국회의원 연구단체 불평등 사회·경제조사연구포럼, <정치적 불평등 해소 위한 연동형 비례대표 도입 관련 주요 쟁점 및 시사점>, 국회 정책연구 보고서.
참여연대 이슈리포트, <20대 총선, 유권자 지지와 국회 의석 배분 현황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