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숨결을 잇다


시대의 변화는 대중과 미디어를 바꾸고, 나아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다. 영화 <박열>은 아나키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왔고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갈망은 영화 <암살>이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으로 하여금 카메라를 여성에게 돌리도록 했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라고 해서 연구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위원회 홍소연 자문위원(60)은 독립운동 연구가 민족주의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고 말한다. 아나키즘이나 여성, 사회주의 등의 분야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져왔지만, 이러한 연구와 대중을 연결해주는 매체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록과 연구가 처음부터 부족하다면, 사람들의 관심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이어질 수 없다. 패러다임 전환의 기저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묵묵히 연구를 해온 이들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독립운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이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면 독립운동은 언젠가 ‘죽은 역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장소는 기억을 담는다

유적지의 보존은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를 기억하고 추모할 공간을 만들어준다는 의의를 가진다.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관리 없이 방치된 수많은 독립운동 유적지는 사람들의 기억의 뒤로 밀려나고 있다. 분명한 우리 역사의 한 조각인 중국 난징의 천녕사(天寧寺,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터)를 다녀왔다.

▲ 군사훈련 장소로 추정되는 천녕사 인근 공터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는 의열단의 단장인 김원봉이 1932년 중국 난징에 설립한 독립운동 군사간부 양성 학교이다. 1935년까지 3년 동안 운영된 이 학교는 실습 과목, 군사 과목, 정치 과목으로 구성된 교육을 제공했다. 4기에 걸쳐 총 12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시인 이육사와 독립투사 윤세주 열사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현재는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 폐허로 남아있으며, 근처에 군사훈련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조차 무성한 잡초로 뒤덮여 있다.


기록을 하나로 모으다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에 힘을 쓰고 있는 이윤옥 작가는 또 다른 문제점으로 기록을 통합할 주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개인이 수집한 자료, 각 부처의 조사 결과, 연구 보고서 등을 수합하여 정확한 정보를 보존하고 제공할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보훈처와 같은 정부 기관이 있긴 하지만 이 작가는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독립유공자 서훈이 엉뚱한 사람에게 전달되거나 묘 위치가 잘못 안내되어 있는 등의 오류가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상하이 만국공묘에 있던 이상용, 신규식, 노백린 선생 등의 묘는 1991년에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된 상태지만,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는 최근까지도 이 정보가 기술되어 있지 않았다. 오류는 이윤옥 작가가 이를 기사화하고 난 후에야 고쳐졌다. 국가보훈처와 같이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잘못된 정보는 이후에도 큰 혼선을 빚을 수 있다. 독립운동사의 올바른 발굴과 계승을 위해서는 산재된 기록들을 하나로 통합할 기관이 필요하다.

▲ 박은식 선생 등의 묘가 있던 상하이 만국공묘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독립운동의 생생한 기억을 지닌 이문창 선생과 오희옥 지사. 그리고 이들의 의지를 이어받기 위해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보았다.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과거와 현재, 역사와 대중이 연결되고 있는 한 독립운동은 아직 살아있는 역사이다. 그러나 이 숨결이 2세기를 넘어 3, 4세기까지 전달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아나키즘’과 ‘여성’의 독립운동사의 당연한 일부분이 되고, 나아가 독립운동의 또 다른 일면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까지,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계속되어야 한다.

글: 박준영 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