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목소리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난 신영숙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
“여성의 독립운동이 남성 못지않았어도 기록으로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고요. 그래서 연구자들이 쉽사리 접근을 못하죠. 나만 해도 1979년에 석사 논문으로 근우회(槿友會)에 관해 썼는데, 『근우』라는 잡지가 창간호만 남아 있고 당시 신문에 근우회가 창립되고 활동한 내용이 약간 있었어요. 여성 독립운동사를 제대로 연구하려면 일제 시기 여성들의 생활사를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 후에는 사회사를 연구한 거예요. 1989년에 ‘일제하 한국 여성 사회사 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 논문을 썼거든요. 그러다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군 ‘위안부’ 문제로 넘어간 거야. 나 자신도 독립운동사 연구를 열심히 안 한 셈이죠.”
신영숙(69)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은 “사실은 힘에 부친다”는 말로 운을 뗐다. “충분히 은퇴해도 되는 시점이라 생각하는데, 물려줄 만한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쉽게 물러나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그는 한국정신대연구소 소장,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장 등을 지내며 40여 년간 한국 근대 여성사 정립에 힘썼다. 그가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기획위원장으로서 연구와 사업을 이어 가게 된 것은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악순환이라면 악순환이죠. 연구자가 많이 나오지 않고, 연구 자체도 어렵고, 연구를 한다 해도 사회적 쓰임새가 별로 없기 때문에 독립운동하듯이 희생적인 자세가 아니고서는 연구를 잘 안 하게 되는 거죠.”
1990년대 이후 일본군 ‘위안부’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그 자신도 시대 흐름을 따랐지만 여성 독립운동사 연구의 끈은 놓지 않았다. 석사 논문에서 다룬 근우회가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여성 운동을 통합한 항일 여성 단체였다면, 신 연구원의 관심은 그중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사회주의 계열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향해 있다.
1920년대 사회주의 계열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단발을 하고 서울 청계천에서 찍은 사진. 왼쪽부터 고명자, 주세죽, 허정숙이다.
“여성인 데다 공산주의자라고 하면 누가 그 사람을 연구하겠어요.”
분단 국가인 한국에서 사회주의 계열, 특히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역사의 뒤안길에 있다. 백범 김구의 비서이자 한인애국단의 핵심 인물이었던 이화림이 대표적이다. 김구와 결별하고 조선의용대에 가담한 그는 『백범일지』에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조선인민군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뒤에는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고, 국내에서는 중국인이 쓴 『이화림 회고록』이 2015년 번역 출간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밖에도 ‘조선의 콜론타이(여성 해방과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한 볼셰비키 혁명가)’로 불린 허정숙,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자이자 연해주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던 김알렉산드라 등이 꼽힌다. 김알렉산드라는 2009년 뒤늦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지만, 해방 이후 북한에서 고위직을 지낸 허정숙은 공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조선여성동우회, 근우회 등에서 활동한 그는 광주 학생 항일 운동과 서울 여학생 만세 운동을 지도한 혐의로 투옥되었다가 중국으로 망명해 항일 무장 투쟁에 뛰어든 사회 운동가였다.
신 연구원은 사회주의가 자유롭게 논의되었던 1920년대를 “여성 운동과 독립운동이 병행한 시기”로 설명한다. 사회주의 계열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여성 해방, 민족 해방, 계급 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가운데 여성 운동이 주요 의제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단발과 자유 연애를 주창했던 허정숙은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인간’이며 ‘여자 해방은 경제적 독립이 근본’ 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자신과 조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했던 이들은 여성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성별과 이념에 묻혀 있다. “한국 사회는 남북 분단의 문제, 남녀의 문제가 중첩되어 있잖아요. 여성 사회주의자도 많았는데 알려질 수 없었고 연구가 안 됐죠. 중국이나 러시아 쪽도 개인이 발로 뛰는 데 한계가 있고…. 북한과 교류하게 된다면 좀 더 많이 알게 되겠죠?”
신영숙 연구원은 2015년 저서 『여성이 여성을 노래하다』에서 김알렉산드라, 정정화, 허정숙을 포함한 여성 독립운동가 22인의 이야기를 시로 담아낸 바 있다. 특히 헌시에 앞서 일제 강점기 한국 여성 인물 유형을 신여성, 농촌 여성, 여공, 정신대, 군 ‘위안부’, 여성 독립운동가 등으로 나누어 소개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부터 ‘위안부’까지 일제 강점기 여성사를 폭넓게 연구해 온 그는 식민지 조선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독립운동가와 ‘위안부’ 모두 일제 강점기 여성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고, 우리가 이들의 역사를 통해 배운다고 할 때는 양쪽을 다 봐야 하겠죠. 여성이 남성 못지않게 독립운동에 기여하고 헌신한 것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게…. 항상 여성은 보조적인 역할, ‘도왔다’지 여성이 ‘했다’가 안 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깨어 나갈지 나도 고민이에요. 한편 ‘위안부’는 피해 여성으로서 강조되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들의 증언에 의해 여권 운동에 앞장섰다고 평가받기도 하죠.”
여성 독립운동가와 일본군 ‘위안부’는 식민지 여성의 전혀 다른 운명을 보여 주지만, 오랜 시간 역사에서 지워졌거나 남성의 조력자 또는 희생자로 그려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위안부’ 생존자이자 인권 활동가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모티브가 된 이용수(90) 씨가 “위안부 할머니들은 아직도 진행 중인 일제하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일제 시기를 살아 낸 여성들에게 진정한 해방은 오지 않았다. 일제로부터, 남성 중심의 역사로부터 그들의 독립운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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