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보는 한국의 '기업가정신'


◆'기업가정신'이 무엇?

사업가로서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질 좋은 제품, 확실한 고객 서비스 등이 떠오르지만 다품종, 다양화하는 현대의 경쟁 시장에서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이런 전략만으로는 너무나도 부족하다. 세계 핵심국가들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을 하나의 타개책으로 내놓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은 이 기업가정신을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간주하고 그 함양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

기업가정신이란 외부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면서 항상 기회를 추구하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혁신적인 사고와 행동을 하고, 그로 인해 시장에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하는 생각과 의지를 말한다. 독일의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에 앞장서는 기업가의 노력이나 의욕이라고 기업가정신을 정의하기도 했다.

기업들은 더는 '이윤 추구'라는 하나의 바퀴만으로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새로운 기술 혁신, 공정무역, 균등한 기회 보장, 노사 화합, 환경보호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기업의 위상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도 다해야 하는 시대다. OECD는 2011년부터 매년 ‘한눈에 보는 기업가정신 보고서’를 발간해 OECD 회원국 및 기타국가의 기업가정신 및 기업 활동 현황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발간된 보고서가 우리나라에서 논란이 됐다. 대기업의 고용 비율(전체 고용 시장에서 대기업의 고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12.8%에 불과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결과를 두고 "대기업이 주도하는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 고용 비율이 너무나 저조하다"며 "11.6%인 그리스 다음으로 낮은 것"이라고 논평했다. 경향신문 등 일부 언론에서도 이런 보도가 쏟아져 나오자 문화일보가 '팩트체크'를 했다.

◆문화일보는 제조업 성애자인가요?

문화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이런 해석이 "통계의 오류를 간과한 것"이라며 "우리나라 대기업 수는 701개로 고용 비중이 50%를 웃도는 일본(3576개)·미국(5543개) 등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문화일보의 팩트체크를 원본 데이터로 재검증해봤다.

문화일보, 韓 대기업 고용 적게 한다?… “평균 고용인원은 세계 4위”, 2017.11.09.

문화일보 팩트체크의 최대 실수는 대기업 수를 왜곡해서 보도한 것이다. 문화일보는 고용 비율의 산출 데이터가 되는 한국의 대기업이 701개라고 보도했지만, 원본 데이터를 살펴보면 사실은 이와 좀 다르다. 제조업 대기업 수는 701개가 맞다. 그러나 원 데이터에는 제조업만 있지 않았다. 흔히 '3대 산업'이라 불리는 서비스업과 건설업의 대기업 수도 함께 제시돼 있었지만, 문화일보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를 빠뜨렸다.

혹, 서비스업과 건설업의 대기업 수가 무시할만한 수치이거나 제조업과 비슷한 수치이기 때문에 생략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전세계의 각국 업종별 대기업 수를 시각화했다.



나라별 파이차트에서 초록색이 제조업, 노란색이 건설업, 주황색이 서비스업이다. 한눈에 봐도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대기업 비중은 세 개의 산업 중 서비스업이 단연 압도적이라는 것. 이는 특히 미국이나 아시아 국가에서 두드러지는데, 우리나라도 서비스업 대기업 수(1,486개)가 제조업과 건설업을 합한 것보다도 많다.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비교적 제조업 대기업 수가 강세인 곳도 보이지만, 이러한 나라들에서도 서비스업 비중이 50~60%에 이른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추세는 대기업 고용 비율(회색 범례)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따라서, 문화일보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대기업 수를 팩트체크에 반드시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락한 것이다.



그럼 세 업종의 대기업 수를 모두 더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오른쪽 막대 그래프가 그 결과다. 한국은 제조업, 서비스업, 건설업 대기업 수가 모두 더해여 7,239개.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OECD 34개국 중 12위다. 문화일보의 주장처럼 '적은' 숫자는 분명 아니다. 미국이 7만 여 개 이상의 '아웃라이어'를 기록하고 있으므로 정확한 비교를 위해 평균보다는 중앙값을 산출했다. 2,910개인 중앙값보다 한국에 2.5배 이상 많은 대기업이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독일, 폴란드, 이탈리아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비교적 제조업 대기업 수가 강세인 곳도 보이지만, 이러한 나라들에서도 서비스업 비중이 50~60%에 이른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추세는 대기업 고용 비율(회색 범례)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따라서, 문화일보는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대기업 수를 팩트체크에 반드시 고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락한 것이다.

◆'대기업 수'와 '고용 비율' 사이의 수상한 관계

첫 번째 실수에 비하면 애교 같아 보이긴 하지만, 문화일보 기사의 논리에는 치명적인 결점이 하나 더 있다. "대기업 수가 적으니 고용 비율도 적을 수밖에 없지!"라는 말은 얼핏 그럴듯해 보이지만,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다. 원본 데이터로 둘의 관계를 분석해 봤다.



그래프에서 보이듯, 대기업 수와 고용 비율 간에는 어느 정도 정의 상관관계가 있다. 따라서 문화일보의 논리는 어느 정도 사실인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 수가 적다고 해서 반드시 대기업 고용 비율이 낮은 건 아니다. 그래프 좌측에 많은 국가들이 몰려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대기업 수가 적은 곳이다. 그 중에서도 노르웨이, 스웨덴, 루마니아 등 주로 북유럽, 동유럽 국가들은 전세계 평균 이하의 대기업 수에도 불구하고 평균 이상의 고용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대기업 수가 평균 이하지만, 전체 고용 시장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고용 비율도 평균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었다. 다만, 국민권익위원회나 일부 언론이 지적했듯이 "대기업 고용 비율이 전세계 꼴찌에서 두번째"라는 식의 그리스 등의 다른 나라와 단순 비교는 좀 어려워 보인다. OECD의 보고서를 면밀히 검토해 보면 그 이유가 숨어 있다.

◆모든 문제의 시발점(욕한거 아님ㅎ;)


문제의 자료는 ‘한눈에 보는 기업가정신 보고서 2017’ 44쪽에 있다.


문제의 자료는 ‘한눈에 보는 기업가정신 보고서 2017’ 44쪽에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게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 러시아, 미국, 일본, 캐나다, 이스라엘, 스위스, 한국의 자료가 나머지 나라의 자료들과 구분돼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나라들을 둘로 구분한 이유는 고용 비율의 산출 근거가 되는 분석 대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같은 보고서 42쪽을 보면 친절하게도 박스 처리까지 해서 둘의 차이가 뭔지 설명해 놨다.


한국 등 7개 나라들은 '피고용자Employees'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반면, 나머지 나라들은 '피고용 인원Persons Employed'을 활용한 것이다. 같은 보고서 42쪽을 보면 친절하게도 색이 다른 박스 처리까지 해서 둘의 차이가 뭔지 설명해 놨다. 피고용 인원은 "현직 소유주, 정기적으로 근무하는 동업자, 무보수 가족 노동자를 포함하지만, 회의 참석만으로 보수를 받는 주식회사 이사와 주주위원, 하청 노동자, 타 회사에 소속돼 수리보수 용역만 제공하는 노동자, 재택 근무자를 제외한" 개념이다. 즉, 피고용자가 피고용 인원보다 더 넓은 개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OECD는 나라마다 통계를 내는 방식이나 노동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구별된 개념을 적용해 자료를 따로 내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같은 피고용자 개념을 사용해 고용 비율을 산출한 7개국끼리의 비교는 가능할지 몰라도, 그리스와 같은 나머지 국가들과 싸잡아서 비교해 "대기업 고용 비율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낮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상처뿐인 싸움... 거, 알만한 분들이 통계로 장난 좀 치지 맙시다!

최고의 전문가들로 구성됐지만 엄밀하지 못한 자료 분석을 내놓는 중앙행정기관, 그것을 그대로 퍼나르거나 반박한답시고 절반의 사실만으로 다시 왜곡하는 언론들. 모두 정말 자료를 '한 눈으로(at a glance)'만 봐서 그런건지, '절반의 사실'만 주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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