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논란, 확률형 아이템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수많은 사건과 의혹들

확률형 아이템이란, 말 그대로 게임 내에서 무작위 확률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다.
일본에서 유래된 뽑기 기계의 형식과 비슷해, 이른바 ‘가챠’ 라고 부르기도 한다.

뽑기 기계, 가챠.원하는 것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없고, 보상 중 하나가 랜덤으로 뽑아진다.

보통 게임 내에서 얻기 어려운, 혹은 불가능한 좋은 아이템을 확률적으로 뽑을 수 있도록 내용물이 구성된다. 이 뽑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과금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게임의 사행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 원인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유저가 원하는 좋은 아이템을 현금으로 확정 구매하지 못하고, 랜덤하게 뽑을 수만 있기 때문에, 이론상 무한정 돈을 쓰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확률형 아이템은 많은 유저들에게 눈엣가시였고, 규제가 필요한 대상으로 자주 오르내렸다. 아무런 규제 없는 회색 지대로 놓여져 있다가, 2015년 3월 정우택 의원의 게임 산업법 법안이 발의 되었다. 법안은 게임의 폭력성, 선정성, 사행성 여부와 정도를 공개하고, 확률형 아이템의 각 아이템 별 정확한 제공 확률을 공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안이 발의되자 게임사들은 난색을 표했다. 게임사들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자율적으로 공개하겠다고 말하며 법안 통과의 여론을 잠재우려 심혈을 기울였다. 2017년 7월 1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강화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안을 내놓았다 확률형 아이템에 관한 논란과 잠재우기가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자율규제와는 별개로, 법안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이다.

해당 이슈가 검증되어야 하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게임사에서 공개한 확률에 대한 신뢰 문제이다. 앞서 언급하였듯 강제적으로 따라야하는 법안이 아닌 자율규제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또, 확률을 공개한다고 해 놓고, 불리한 정보를 온갖 편법으로 덮어놓기도 한다. 예를 들어, 귀한 아이템을 확률적으로 얻을 수 있는 상자도 있고, 그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가 있다고 하자. 열쇠를 완성하려면 ‘열쇠 조각’ 30개를 모아야 하는데, 그 ‘열쇠 조각’이 확률적으로 나온다.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상자는 비록 확률형 아이템이나, 게임 내 재화가 소비되고, 열쇠 조각의 경우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으나 현금이 소비되므로 후자만 확률을 공개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율규제는 그 자체로도 강제성이 없을 뿐더러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굉장히 많다.
둘째, 확률 조작 여부를 유저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확률을 아예 공개하지 않는 경우는 당연하고, 공개하였더라도 그 수치가 정말로 게임 내 수치인지 유저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개인의 자산을 쏟아 표본을 아주 크게 늘려 실험해보는 수밖에 없는데,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방편일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하였더라도 검증이 가능하다는 보장도 없다.
셋째, 수치를 공개하는 법 자체도 천차만별이다.

리니지 M의 확률공개. 세세한 확률도 모두 정확한 수치로 공개하였다.

‘나이트발드의 양손검을 얻을 확률은 0.0006%’(엔씨소프트 리니지M)처럼 정확하게 아이템과 수치를 공개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설 등급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2.2%’ 혹은 ‘고급 등급 아이템이 나올 확률은 1.5% ~ 4.5%사이’(넷마블 모두의 마블)처럼 특정 아이템이나 확률을 뭉뚱그려 내놓는 경우도 있다.

모두의 마블의 확률 공개. 구간 정보를 공개하였다.

어느 방향을 선택할지는 모두 게임사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확률 조작에 대한 대표적인 사건을 알아보자.

NextFloor의 대표작, ‘데스티니 차일드’라 는 게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주)넥스트 플로어의 모바일 게임 데스티니 차일드.

해당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등급별로 1성부터 5성까지 존재한다. 가장 좋은 캐릭터는 5성이며, 개발사는 5성을 뽑을 수 있는 확률을 1.44%로 공시하였다.
그러나 한 유저가 1.44%로 공시된 아이템을 5640번 뽑았더니 42번 나왔다고 주장했다. 이는 통계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낮은 확률이다.

1.44%의 확률로 5640번 시도했을 때 42번이 나오는 것은 통계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낮은 확률.

이후로도 많은 유저들이 표본을 모으면서, 해당 캐릭터를 뽑을 확률이 1.44%보다 훨씬 낮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며칠 후, 게임사가 답변을 내놓았다. 게임사의 답변은 이러하다. 1.44%라는 확률은 최종 마일리지 획득 확률이 포함되어 있는 수치라는 것이다. 즉 확정 보상으로 주어지는 보너스의 확률을 같이 계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다.
이후 개발사의 실수임을 인정하면서 게임 출시부터 사건 당일까지 확률형 아이템 뽑기에 사용하였던 게임 내 재화를 모두 환불하겠다고 공지하였다. 해당 게임 내 재화는 오로지 현금으로만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게임 내에서는 현금과 같은 취급을 가진다. 하지만 정작 진짜 현금 환불은 따로 공지하지 않았다. 또, 확률 공시에 실수를 하였다고 해도, 해당 확률을 보고 결제를 결심한 소비자가 있을 것인데 아무런 법적 책임도 묻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은가? 또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게임사는 정말 확률형 아이템의 공시 확률을 조작할까?

공시된 확률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조작하는 경우, 회사가 얻는 이익은 무엇일까?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아도, 회사는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아이템을 획득할 기회를 적게 해 게임 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는 한 편, 유저들의 소비를 이끌어낼 수 있다. 사실은 0.1%인데 10%로 공시하는 등의 큰 리스크로 조작하지 않아도, 1.1%일 때와 0.9%일 때, 결제를 마음먹는 유저의 비율이 다를 것이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현직자에게 질문 해 보았다.

많은 중소 게임 개발사에서 기획 및 사업 업무로 4년 동안 일해 본 J씨.

현직자의 게임 운영 경험에 따르면, 조작하는 경우가 당연히 있다고 한다. 다만 그런 경우 굳이 공시하는 것은 드물다고 말했다. 굉장히 좋은 아이템을 넣었다가, 일부 유저가 그것을 뽑아 커뮤니티에 이른바 ‘인증글’을 올리면 아이템의 확률을 다시 극도로 낮게 바꾸는 등의 조작을 한다고 한다. 즉, 뽑힌다고 리스트에는 나와있지만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거의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조작이 가능한 이유는 게임 서비스의 주 플랫폼이 모바일로 바뀌면서 ‘단타로 치고 빠지는’ 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동안 운영하면서 최대한 유저들의 결제를 유도한 뒤 서비스를 닫는다. 너무나 많은 모바일 게임이 출시되었다가 사라지는 레드 오션이기 때문에, 개발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형태의 서비스를 하는 것이 ‘이득’이다.
즉, 어차피 금방 닫을 게임이고 돈은 벌어야 하므로 조작을 하는 것이다.

확률을 조작한다고 할 때, 회사가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는 무엇인가?

J씨는 조작을 한다는 것에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고 말하였다.
첫 번째, 데이터의 수치 자체를 공시된 것과 다르게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데이터의 관리 비용 자체는 0에 수렴한다. 어차피 공시된 확률의 경우 외부에서 정상적인 경로로 원본 데이터를 확인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 확률을 독립 시행이 아닌 조건 시행으로 만드는 것이다.
20%의 확률로 뽑히는 아이템이 있다고 할 때, 각 시행 시 무조건 20%로 뽑도록 하는게 아니라, 다섯 번 이상 못 뽑으면 50%로 확률을 올려주거나, 두 번 연속으로 뽑으면 5%로 내려버리거나 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서버 단에서 코드가 입력되어야 하므로 전자보다는 관리 비용이 있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확률을 건드리든, 공시된 것과 다름이 드러났을 때 게임, 더 나아가 회사의 이미지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공시된 확률과 다르게 써도 회사 측에서는 큰 손해가 없다.

하지만 이런 시선에 대한 반론도 있다. 공시된 확률조차 조작으로 보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확률 공시는 자율규제안을 준수하기 위해 나온 방안이다. 따라서, 공시를 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실제로 블루홀의 배틀그라운드는 국내 게임회사이면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어 확률 공개에 대한 여론이 거셈에도 불구하고, 확률을 공개하지 않았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공개하지 않은 배틀그라운드.

개발사의 선택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일단 확률이 공개되면, 표본 수를 극단적으로 늘려 실험을 해보는 유저는 반드시 생기고, 조작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리스크가 항상 존재하게 된다. 아예 공시를 하지 않으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
왜 굳이 확률을 다 밝혀놓고 조작을 하는 이중의 짐을 짊어지겠는가?

결론을 말해보자면,

싱겁게도 확률 조작을 한다고도 하지 않는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투명한 정보공개가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하지만 법적으로 모든 아이템의 확률 공개가 강제된다면, 게임 내 콘텐츠를 스포 일러하게 되거나, 개발자의 노력으로 발전시킨 게임 내 공식을 노출시키는 위험이 있는 등 일괄적인 규제는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게임사의 자율에 맡기는 것은 소비자에게 부담이 크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한 사회적인 고민이 필요한 사안이다.